이 책 박완서의 <나목>은 박수근의 유화 <나무와 두 여인>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옥희도는 두말할 것도 없이 <나무와 두 여인> 그림에서의 나목이며, 아이를 업고 있는 여인은 옥희도의 아내, 그리고 머리에 짐을 지고 가는 여인은 작품의 주인공 이경으로 볼 수 있다. 잠시 나목에서 휴식을 취한 여인은 인생의 짐을 머리에 이고 그의 삶을 향해 다시 나아가는 모습을 하고 있는 반면, 아이를 업고 있는 여인은 나목 밑에서 서성이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이 작품은 작가 박완서의 등단작이자 한국 리얼리즘문학에서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박완서 문학의 근원을 짚어볼 수 있는 실마리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나목>은 6·25전쟁과 분단 체험이 시·공간적 배경을 이루는 대부분의 박완서 소설들과는 달리 서사를 이끌어가는 중심축에서 벗어나 있다. 그러나 전쟁의 현장과 이데올로기의 대결이라는 극한상황은 작품의 암울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후경으로 작용하고 있을 뿐이지만, 주인공과 작중인물들의 의식과 행동을 통해 엄혹하고 긴박한 현실이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전쟁은 특수한 의미보다는 극한적 상황일반이라는 보다 추상적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전쟁의 현장은 작중인물들이 겪는 추위, 공포, 불안이라는 심리적 기제만으로도 절실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소설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얘기해보면 6.25 전쟁 와중에 폭격으로 두 오빠를 잃은 이경은 서울의 고가에서 홀어머니와 함께 단둘이 살고 있었는데, 오빠들이 죽은 후 그녀의 어머니는 삶의 활기를 완전히 읽고 그녀에게는 전혀 무관심해진다. 그녀는 미군 부대 안에서 미군들로부터 초상화 청탁을 받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옥희도라는 화가가 그 곳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다. 외로움과 절망감에 빠져 있던 이경은 어느 사람들과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옥희도를 사랑하게 된다.
한편 px 전기공인 황태수는 이경의 사랑을 얻고자 하지만 그녀는 오로지 옥희도에게만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유부남에 아이가 다섯이나 딸린 옥희도와 이경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결국 이경은 황태수와 결혼한다. 훗날 이경은 옥희도의 유작전에서 그가 그린 나목을 보면서 전쟁 당시의 자신의 삶과 옥희도에 대한 회상에 잠긴다.
작품에서 이경은 자신을 사랑하는 평범한 남자 황태수라는 인물을 거부하고 유부남 옥희도를 사랑한다. 이경이 옥희도를 사랑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로 그녀의 성장과정을 들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두 오빠의 사망으로 인한 어떤 상실감, 어머니와 딸만의 단 둘의 가족관계에서 벗어나고픈 욕망, 그저 그렇게 돈이나 받아가면서 생계를 유지하려는 환쟁이들 사이에서 이경은 황량한 풍경이 담긴 눈을 가진 옥희도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이경은 옥희도가 하나의 거목으로서 늘 자신이 다가와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옥희도는 이경에게 있어 아버지이자 두 오빠인 것이다. 그런 옥희도를 이경은 사랑한다고 고백하지만, 옥희도는 사랑하는 사이보다는 어울리는 사이가 더 축복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하며, 태수와 잘 어울리는 한쌍이라고 말한다.
이경은 옥희도의 부인이 생활의 어려움만을 푸념하는 소리를 듣고는 그녀에게 화가의 아내가 될 자격이 없다고 소리치며 뛰어나온다. 그리고 자신이 옆에 있어주는 것이야말로 옥희도가 환쟁이가 아닌 진정한 화가의 길을 갈 수 있는 길이라고 믿게 된다. 그런 이경에게 옥희도는 아버지와 오빠의 환상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그녀의 곁을 떠난다.
그후 이경은 그저 평범한 남자 황태수와 결혼을 하게 되고, 아이를 둘 낳고 살아가게 된다. 어느날 신문에서 고 옥희도 유작전에 관한 기사를 읽고 남편과 함께 전시회를 찾은 이경은 옛날 그녀가 옥희도 집에 갔을 때 그리고 있던 그림을 보고 자신에게는 이 그림이 고목(枯木)이 아니라 나목(裸木)이었음을 알게 된다. 자신은 그 나목에서 잠시 스쳐간 여인이었을 뿐임을, 부질없이 피곤한 심신을 달랠 녹음을 기대하며 그 옆을 잠시 서성댄 철없는 여인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작품은 6.25라는 시대상황 속에서 여러 사회문제와 인간문제를 드러내는 작품이긴 하지만, 이경 자신에게 있어서는 한 청춘의 성숙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작품의 의의는 인간의 근원적인 외로움인 존재론적 고독을 포착하는 데에서 나아가 그 고독을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그물망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한 요소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인간은 근본적으로 외로운 존재>라는 사실이 부각되고 있으면서도 역설적으로 사랑의 필요성과 의미가 강조되고 있는 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