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싶다는 건 항상 마음에 있었다. 무언가를 창조하고 가꿔가는것,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은 그러지 못했기에 다른 곳에서 그런 성취감을 얻고 싶었던것 같다. 다만, 언어에 취약하고 글을 풀어내는 재주가 미약해 쉽사리 시작하지 못했다. 핑계이다. 소설 절창은 글을 쓴다는 건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이고, 그 속에서 특별한 시선이 있는 건 글을 쓰면서 알아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별함은 창작의 과정에서 나온다는 것. 준비만으로 버겁기 보다는 펜을 먼저 잡아보는게 낫지 않을까 싶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 설레지만 버거운 일이지 않을까 한다. 내 마음 하나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는데 남의 것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다. 마음을 읽는 자와 마음을 읽히길 원하는자,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관찰하는 화자가 만들어낸 소설 절창이다. 상처란 마음을 읽는 통로이자, 마음을 보여주는 장치이다. 굳이 읽기까지 나아갈 필요 없다. 무엇을 판독하는 순간 오독이 발생한다. 누구나 어디까지나 자신이 판독한 결과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읽기란 불가능에 가깝고 해석은 완벽할 수 없다. 그로 인해 균열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상처는 입는 것도 입는 것도 하지않는 것이 좋다. 그러나 상처 없는 관계라는 게 일찍이 존재나 하는 것인가. "상처는 사랑의 누룩이며, 이제 나는 상처를 원경으로 삼지 않는 사랑이라는 걸 더는 알지 못하게 되었다. 상처는 필연이고 용서는 선택이지만, 어쩌면 상처를 가만히 들여다 봄으로써 상처를 만짐으로 인해 상처를 통해서만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이 세상에 있다. "
주저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나를 감금하고 있는 주인공, 감금된 주인공은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 스톡홀름 증후군, 페미니즘 관점에서는 시대에 동떨어진 감성이 소설 속에 있다. 그러나 이것을 유려한 문체로 감추고, 삶의 본질에 이르는 것은 작가 구병모의 필력이다. "하늘과 땅 같은 자연은 그냥 존재할 뿐이지 딱히 어진 마음을 갖고 있지 않으며, 인간 따위 문물의 입장에서는 짚으로 엮은 개만도 못하다. 그러니 너의 눈앞에 있는 한 권의 소설은 그 무의미의 운명에 어떻게든 의미 비슷한 걸 부여해 보고 죽으려던 예술가들의 오랜 싸움과 필연적인 패배의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