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문득문득 공허할 때가 많았습니다. 앞만 보고 나름대로 열심히 달려온 것 같은데, 여전히 미래는 불안하기만 하고 문득 주변을 둘러보면 나보다 앞서가는 것 같은 사람들 때문에 스스로를 갉아먹는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이게 맞나?' 싶은 고민이 깊어지던 차에 우연히 이 책을 집어 들게 됐는데, 평소에 그저 '염세주의자'로만 알고 있던 쇼펜하우어의 말들이 생각보다 너무 현실적이고 뼈를 때리는 위로가 되어 깊게 몰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와닿았던 건 "인생은 고통과 권태를 오가는 시계추 같다"는 말이었습니다. 원하는 걸 갖지 못할 때는 괴롭고, 막상 가지고 나면 금방 질려버리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는 뜻이죠. 돌이켜보니 저 역시 더 나은 조건, 더 안정적인 미래, 더 높은 목표만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구하느라 정작 지금 내 손에 쥐어진 소중한 것들을 누리지 못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쇼펜하우어는 행복이란 대단한 쾌락을 쫓는 게 아니라, 고통과 불안이 없는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동안 저는 행복을 '더하기'라고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욕심을 '빼기' 하는 것만으로도 삶이 훨씬 가벼워질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또 하나 마음에 깊이 남은 단어는 '고독'이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혼자 있으면 소외감을 느끼거나 외롭다고 생각해서, 어떻게든 사람들과 어울리고 인맥을 넓히며 타인에게 인정받으려고 애를 쓰며 삽니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혼자 있는 시간이야말로 온전히 나 자신을 마주하고 내면의 단단함을 기르는 가장 가치 있는 시간이라고 강조합니다. 남들의 시선이나 사회적 기준에 맞춰 숙제하듯 사는 인생이 아니라, 내 주관을 가지고 나만의 속도로 사는 게 진짜 멋진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에 지쳐있던 저에게 "혼자 있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고귀한 것"이라는 메시지는 그 어떤 말보다 큰 힘이 되었습니다.
특히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가치는 '그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혹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가 아니라, '그가 누구인가' 즉, 그 사람의 성격과 지적 능력, 내면의 풍요로움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그동안 재테크나 커리어 같은 외적인 성장에만 매몰되어 정작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는 소홀히 했던 제 모습이 부끄러워지기도 했습니다. 돈이나 명예는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외적인 조건이지만, 내 안에 쌓인 지혜와 평온함은 누구도 뺏어갈 수 없는 영원한 자산이라는 점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책은 저에게 무조건 "힘내라", "다 잘 될 거다" 같은 뻔하고 무책임한 위로를 건네지 않습니다. 오히려 삶은 원래 고단하고 고통스러운 것이니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라고 덤덤하게 말해줍니다. 그런데 그 냉정한 조언이 오히려 제 마음을 더 편하게 만들어줬습니다.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원래 인생이 이런 거구나'라는 깨달음이 오히려 안도감을 준 것이죠.
독서를 마치고 나니 앞으로 또 삶이 흔들리거나 허무함이 밀려올 때, 밖으로 나가 타인을 기웃거리기보다 내 방으로 들어가 내 안을 먼저 들여다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이제는 남들이 정해놓은 '성공'의 궤도에 나를 끼워 맞추려 애쓰지 않으려 합니다. 조금은 느리더라도, 혹은 조금은 외롭더라도 내면의 밀도를 채우는 일에 더 집중하고 싶습니다. 남은 인생은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들로 내 일상을 꽉 채워나가며 나 자신과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 살아갈 생각입니다. 삶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는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은 잠시 짐을 내려놓고 숨을 고르게 해주는 아주 단단한 지팡이가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