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고 출근하면서, 그리고 모니터 앞에 앉아 엑셀 숫자들과 씨름하면서 문득문득 정체 모를 답답함이 밀려올 때가 있었다.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내 동기들은, 혹은 SNS 속 저 사람들은 저만치 앞서가는데 나만 제자리걸음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들 말이다. 이 막연한 감정의 실체를 명확하게 파헤쳐 준 책이 바로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었다. 저자는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 느끼는 피로감의 본질이 단순히 육체적 노동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사회적 위치, 즉 ‘지위(Status)’에서 오는 불안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책에서 가장 가슴을 찌른 대목은 현대의 ‘능력주의(Meritocracy)’가 개인에게 주는 정서적 형벌에 대한 이야기였다. 과거 신분제 사회에서는 가난이나 낮은 지위가 ‘내 탓’이 아니었다. 그저 불운한 운명 탓으로 돌리며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하지만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현대 사회에서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성공한 사람은 능력이 있어서 성공한 것이고, 낙오한 사람은 노력이 부족해서 낙오한 것이라는 냉혹한 논리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인사고과 시즌이 되거나 프로젝트 결과가 나올 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실패는 곧 나의 무능을 증명하는 낙인이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불안의 밑바닥에 ‘사랑 결핍’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더 높은 연봉을 원하고, 더 큰 집을 바라고, 직급을 올리려 애쓰는 진짜 이유는 물질 그 자체보다 타인에게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서’, 즉 존중과 관심을 받고 싶어서라는 것이다.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명함 한 장이 주는 무게감이 바로 이 지위를 대변한다. 명함의 직급이 올라갈 때 사람들이 보여주는 태도의 변화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결국 우리는 사회라는 거대한 속물 집단 안에서 ‘누군가(Somebody)’가 되기 위해 매일 영혼을 갈아 넣고 있었던 셈이다.
알랭 드 보통은 이 고질적인 마음의 병을 고치기 위한 처방전으로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 등을 제시한다. 그중에서도 ‘철학’과 ‘예술’의 관점이 큰 위로가 되었다. 철학은 타인의 무차별적인 평가를 이성의 여과기에 걸러내어, 그들의 판단이 과연 합리적인지 따져보게 만든다. 또한 예술은 평범하고 소박한 삶 역시 그 자체로 얼마나 가치 있고 아름다운지 조명해 준다. 굳이 임원이 되지 않아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단한 부를 축적하지 않아도, 매일 주어진 삶을 묵묵히 버텨내는 평범한 일상 자체가 존엄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책을 덮으며 내 책상 위의 모니터와 명함을 다시 바라보았다. 지위에 대한 불안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회사원에게 어쩌면 감기처럼 평생 안고 가야 할 숙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그 불안이 찾아올 때마다 나 자신을 갉아먹는 대신, 그것이 내 가치의 부족이 아닌 현대 사회의 구조적 특징임을 담담히 인정하기로 했다. 남들의 시선이라는 풍선에 helium 가스를 채우려 애쓰기보다, 내 내면의 단단한 자존감을 채우는 것. 그것이 매일 출퇴근길을 버텨내는 대한민국 회사원인 내가 이 불안한 세상에서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