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끄럽고 얇은 종이일수록 그 모서리에 베였을 때의 상처는 유독 깊고 쓰라리다. 한강 작가의 문체가 바로 그렇다. 섬세하고 유려한 문장들은 비극적인 역사 앞에서도 상처를 억지로 품어주거나 미화하여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부드러운 뒤에 숨겨진 날카로움으로 독자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며, 비극의 실체를 더욱 강렬하게 고발하고 우리 스스로가 그 아픔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평소 한강 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읽으며 인간의 내면과 상처를 들여다보고자 노력해 왔는데, 지난번 제주 4·3 사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에 이어 대한민국 현대사의 또 다른 거대한 슬픔을 담아낸 "소년이 온다"를 선택하게 된 것 역시 한강 특유의 문체의 매력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문장이 먼저 떠올랐다. 그동안 나는 이 소설의 중심 사건인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내 일처럼 깊이 있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역사 교과서에서 건조하게 적혀 있던 "무고한 시민들이 군부 독재에 맞서 싸우다 많이 희생되었다"라는 텍스트가 내가 가진 인식의 전부였다. 숫자와 연도로만 인식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나는 그저 철저한 제3자였다. 역사를 진정으로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이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고민이 소설을 읽게 된 계기였다.
작품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장에 있었던 시민 한 명, 한 명의 부서진 삶을 현미경처럼 세밀하게 조명한다. 무자비한 국가 폭력의 참상에 머무르지 않고, 지옥 같은 그날 이후 홀로 '살아남게 된 자들'이 겪어내야 했던 고통스러운 일상을 처절하게 보여준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작품 속 이 한 문장이 심장에 내리 박혔다. 남겨진 이들에게 삶은 더 이상 일상이 아니었다. 끝없는 죄책감과 스스로에 대한 환멸감에 사로잡힌 채, 그저 느리게 죽어가는 또 다른 형태의 장례식일 뿐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사건의 트라우마를 이기지 못하고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작가는 독자가 그 고통의 과정을 한 걸음씩 묵묵히 따라가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나는 깊은 부끄러움을 마주한다. 타인의 참혹한 고통을 '지나간 역사'라는 편리한 서랍 속에 안전하게 분류해 두고 외면해 왔던, 타인의 슬픔에 무감각했던 나 자신의 오만함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제목은 전반적인 비극적 전개와 비교해 볼 때 지독하리만큼 역설적이다. 차가운 현실에서 한 번 죽은 자는 결코 돌아올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 '온다'는 것은 육신의 부활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남은 우리가 그들의 죽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끊임없이 기억하며 이야기할 때, 그 소년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온다는 연대의 의미이다. 죽음은 삶을 단절시키지만, 살아남은 자들의 올바른 기억과 애도는 죽은 자를 다시 우리 곁으로 불러낸다.
결국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박제된 사실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을 살다 간 평범한 소년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들의 영혼을 지금 이곳으로 마중 나가는 일이다. 내게 건조했던 역사의 페이지에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어 주었고, 외면하지 않고 함께 기억하는 것만이 남겨진 자들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추모임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게 한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