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아비라는 책을 읽고 이 책은 '아버지가 부재한 가정'이라는 결핍의 서사를 눈물 혹은 슬픔이 아닌 통통 튀는 유머와 상상력으로 쓰여진 독창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소설 속 주인공인 '나'는 태어나기도 전에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고 집을 나간 아버지를 원망하기보다, 분홍색 반바지를 입고 전 세계를 멈추지 않고 달리는 유쾌한 존재로 상상한다. 가난과 버려짐이라는 비극적 현실을 상상력이라는 방패로 위트 있게 맞서는 인물의 태도를 보고 왜인지 모를 시원함을 느끼기도 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상처를 대하는 인물들의 씩씩한 태도이다. 특히 반지하 방에서 홀로 '나'를 키워낸 어머니는 가련한 피해자의 위치에 머물지 않는다. "애비가 없지 자식이 없냐"며 씩씩하게 삶을 개척해 나가는 어머니의 강인한 생명력은 이 소설의 중심을 단단하게 잡아준다. 어머니의 호쾌한 유머를 물려받은 '나' 역시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거나 미워하는 대신, 끝없이 달리는 존재로 객관화하며 결핍이 줄 수 있는 슬픔의 무게를 털어낸다. 비극을 희극으로 치환해 버리는 이들 모녀의 연대와 긍정성은 슬픔에 잠식되지 않는 강력한 무기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소설의 후반부, 미국에 사는 새어머니로부터 진짜 아버지의 부고 소식이 날아들면서 상상 속 '달리는 아비'는 초라한 현실의 아버지로 내려앉는다. 상상력 뒤에 숨겨두었던 진짜 상처와 마주하는 순간이다. '나'는 아버지가 죽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자식들에게 미안해하기는커녕, 자신이 지키지 못한 평범한 가정을 부러워하며 외롭게 눈을 감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비로소 마주한 아버지는 대단한 도망자도, 유쾌한 러너도 아닌 그저 삶에서 도망치기 바빴던 나약하고 불쌍한 한 인간에 불과했다.
여기서 작가는 인물을 단순한 용서로 이끌지 않는다. '나'는 상상 속에서 아버지에게 눈부신 햇살을 막아줄 선글라스를 씌워주며, 그가 우리를 버리고 도망친 것이 아니라 미안함 때문에 멈추지 못하고 달렸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는 아버지를 향한 맹목적인 면죄부가 아니다. 상처를 준 대상을 연민하고 이해함으로써, 마침내 내 안의 결핍과 상처로부터 스스로를 완전히 해방시키는 주체적인 치유의 과정이다.
이 책을 다 읽고 진정한 성장이란 내 삶에 들이닥친 불행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고유한 시선과 유머로 그 불행의 무게를 가볍게 들어 올리는 과정임을 깨달았다. 반지하라는 어두운 공간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그 경쾌한 달리기처럼, 삶의 어떤 결핍 앞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단단한 내면의 힘을 배울 수 있었던 뜻깊은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