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공지사항 FAQ QnA
  • New Arrival
  • BestBooks
  • Category
  • Book Cafe
  • My Books
  • 후기공유
  • 읽고 싶은 책 요청
프로젝트 헤일메리
5.0
  • 조회 0
  • 작성일 2026-05-26
  • 작성자 홍라윤
0 0
왜 이 책을 골랐나
10년차 직장인이 되니 책을 고르는 기준이 까다로워졌다. 시간은 늘 부족하고 머리도 무거워서, 무언가 남기는 책이 아니면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앤디 위어의 「마션」을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으로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집어 들었다. 600페이지가 넘어 부담스러웠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주일 만에 다 읽었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건 SF 모험소설이 아니라 어떤 직장인의 극한 출장 보고서였다는 것을.
줄거리 — 기억상실로 시작하는 단독 출장
주인공 라일랜드 그레이스는 낯선 우주선 안에서 깨어난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거기 있는지조차 모른 채. 옆에는 죽은 동료 두 명이 누워 있다. 그는 기억을 조금씩 더듬어가며 자신이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짊어진 임무에 보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태양 에너지를 갉아먹는 외계 미생물 '아스트로파지'로 인해 지구는 점점 빙하기로 향하고 있고, 그의 임무는 12광년 떨어진 항성계에서 해결책의 실마리를 찾아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처음부터 영웅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자원해서 간 게 아니었다. 후반부에 밝혀지는 그의 출발 경위는 다소 불편하지만, 어딘가 안도감을 주기도 했다. 사명감에 불타는 영웅보다 "어쩌다 보니 책임을 떠안게 된 평범한 사람"이 훨씬 현실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솔직히 회사에서도 그렇지 않은가. 거창한 비전을 갖고 시작한 프로젝트보다, "어쩌다 떠맡은" 일들이 더 많고, 그걸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이 결국 인정받는다. 그레이스는 그런 인물의 우주판이었다.
ISTJ 직장인이 본 라일랜드 그레이스의 일하는 방식
이 책이 나에게 유독 좋았던 이유는 주인공의 문제 해결 방식 때문이다. 그레이스는 천재가 아니다. 그저 중학교 과학 교사 출신의 박사일 뿐이고, 본인 스스로도 자신은 평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주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는 늘 같은 순서로 움직인다.
먼저 자신이 가진 자원을 빠짐없이 파악한다. 다음으로 문제를 가장 작은 단위로 분해한다. 그리고 가설을 세우고 실험한다. 실패하면 데이터를 기록하고 다시 시도한다. 이건 SF 영웅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회사에서 매일 하는 일의 방식 그 자체다. 시스템 오류가 나면 로그를 보고, 가설을 세우고, 테스트하고,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시도하는 그 익숙한 절차. 그레이스의 무대가 우주이고 실패하면 죽을 뿐, 일의 본질은 정확히 같았다.
특히 깊이 와닿았던 건 그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정확히 인정하는 태도였다. 추측으로 일하지 않고, 가설은 가설이라고 명시한다. "이건 확인해봐야 안다"는 그의 입버릇은 10년차 직장인이 신입에게 가장 먼저 가르치고 싶은 자세와 똑같다. 모른다고 말하는 게 무능이 아니라 신뢰의 기본이라는 것. 그레이스는 그걸 행동으로 보여준다.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는 그가 우주선의 연료 잔량을 계산하고, 어떤 임무가 가능하고 어떤 임무는 불가능한지 냉정하게 분리해 내는 부분이다. 그는 감정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숫자가 안 되면 안 된다고 말한다. 회사에서 무리한 일정을 받아들였다가 결국 모두가 고통받는 상황을 수없이 봐온 입장에서, 그의 이런 태도는 통쾌하기까지 했다. 가능과 불가능을 구분해 말할 수 있는 능력. 그게 진짜 전문가의 기본이라는 걸 책은 조용히 알려준다.
록키 — 외계인 동료와의 협업기
이 책의 절반은 록키라는 외계 생명체와의 협업이다. 둘은 언어가 다르고, 호흡하는 기체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다르다. 그런데도 그들은 함께 일한다. 공통 언어를 처음부터 만들고, 측정 단위를 통일하고, 서로의 생물학적 한계를 명확히 공유하면서 신뢰를 쌓아간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부서가 다른 팀과 협업하던 수많은 프로젝트가 떠올랐다. 개발팀과 마케팅팀, 영업팀과 기획팀, 본사와 협력사. 우리도 록키와 그레이스만큼이나 서로 다른 언어를 쓴다. 같은 한국어를 써도 부서가 다르면 같은 단어가 다른 의미가 되곤 한다. 책이 보여준 협업의 핵심은 단순했다. 상대를 바꾸려 하지 않고, 서로의 차이를 사실로 인정한 채, 공통의 결과물을 위한 도구를 함께 만드는 것.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사실과 데이터로 신뢰를 쌓아가는 두 사람의 관계는, ISTJ인 내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동료 관계의 모습 그 자체였다. 서로를 향한 호들갑스러운 감정 표현 없이도, 행동과 결과로 우정이 쌓여가는 과정이 담백해서 더 좋았다.
마지막 선택 — 의무와 자기보존 사이
결말은 자세히 말하지 않겠다. 다만 그레이스가 마지막에 내린 선택은 결코 거창하게 "영웅적"이지 않다. 그것은 오랫동안 함께 일한 동료에 대한 당연한 의리이자,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이었다. 거창한 사명감이 아니라 "내가 지금 여기서 그만두면 안 되는 이유" 하나가 그를 움직였다.
10년을 일하면서 천천히 깨달은 게 있다. 회사를 다니게 하는 힘은 비전이나 거창한 사명이 아니라,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내가 맺어둔 작은 약속들이라는 사실. 그레이스의 마지막 선택은 그 감각을 정확히 짚어냈다.
남는 것
책을 덮으며 메모해둔 문장이 하나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 일단 해본다." SF 우주 모험이 아니라 월요일 아침 회의실에서 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말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천재의 이야기가 아니라 성실한 사람의 이야기다. 어쩌면 그래서 나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SF였는지도 모른다. 영웅이 되지 않아도, 천재가 아니어도, 자기 자리에서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가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 10년차 직장인에게 이보다 더 필요한 메시지가 있을까. 다음에 무언가 막막한 일이 닥치면, 나는 라일랜드 그레이스처럼 일단 자원을 점검하고 문제를 잘게 쪼개어 보려고 한다. 그게 이 책이 나에게 남긴, 가장 실용적인 선물이다.
등록
도서 대출
대출이 불가능합니다.
취소 확인
알림
내용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