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30대 여성 영두가 창경궁 대온실 보수공사의 백서를 작성하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강화군 석모도 출신인 영두는 중학생 때 창경궁 인근 원서동의 '낙원하숙'에서 지냈습니다. 하숙집 주인 문자 할머니와 그의 손녀 리사와 함께 생활했던 경험과 그 시절의 아프고 억울한 기억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 작성이라는 업무는 영두에게 단순한 기록 작업이 아닌,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는 계기가 됩니다.
작품은 100여 년이라는 긴 시간을 아우르며 세 개의 시점을 교차시킵니다. 현재의 영두가 대온실 보수공사를 기록하는 시점, 20년 전 영두의 중학생 시절, 그리고 20세기 초 일제강점기 시대입니다. 이 세 시간대를 오가는 서사는 마치 대온실의 유리창처럼 투명하게 서로를 비추며, 시간의 겹을 통해 더욱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창경궁 대온실은 이 소설의 중심 소재이자 상징적 공간입니다.
1909년에 건설된 이 건물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 유리온실이자 동양 최대 규모였다는 역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일제강점기의 상징물이기도 했습니다.
작가는 대온실을 통해 역사의 연속성과 단절, 그리고 복원의 의미를 탐구합니다. 대온실은 일제에 의해 훼손된 창경궁의 일부이면서도, 1983년 창경궁 복원 과정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건물입니다. 이는 역사의 아픔을 간직하면서도 현재와 공존하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지닙니다.
특히, 작품의 후반부에 밝혀지는 문자 할머니의 사연 속 상처와 부조리는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도 가슴에 시퍼런 멍이 든것 처럼 아픕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기억의 복원과 재구성 방식입니다. 영두는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단순히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파편들을 모아 하나의 이야기로 재구성합니다.
이 과정에서 영두는 자신의 기억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기억과 증언을 통해 사실의 두께를 더해갑니다. 마치 대온실이 물리적으로 수리되어 가듯이, 기억도 하나의 건축물처럼 시간과 공간을 통해 완성되어 갑니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근본적으로 상처와 치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영두의 개인적 상처,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상처, 세대 간의 단절로 인한 상처 등 다양한 층위의 상처들이 작품 속에 존재합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러한 상처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영두가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고 치유해가는 과정은 곧 역사적 상처를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과정과 맞물립니다.
김금희 작가는 이 작품에서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섬세한 문체를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어떤 정념에도 붙들려 있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무기력이나 냉소에 함몰되지도 않는, 이 초연하고 성숙한 힘"으로 평가받는 그의 문체는 이 작품의 무게를 더합니다.
창경궁과 대온실이라는 공간의 묘사와 인물의 심리가 씨줄과 날줄이 교차하듯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이러한 섬세한 묘사는 대온실이라는 공간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살아있는 존재로 느끼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