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이상문학상 작품집>
대상 수상작
[눈과 돌멩이 - 위수정]
대학에서 만난 세 사람의 친구가 등장한다. 한 명이 이른나이에 먼저 세상을 떠나고 두 친구가 죽은 친구의 유언을 들어주기 위에 일본으로 떠난다. 유언의 내용은 자신의 유골 일부를 일본 깊은 산속의 신사에 뿌려달라는 것이었다. 두 친구는 비행기로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자동차를 렌트하여 신사로 가지만 폭설이 내린다. 겨우겨우 신사에 도착하여 친구의 유골을 뿌리지만 심해진 눈발에 둘은 고립될 위기에 처한다. 그러던 중 현지인에게 뜻밖의 도움을 받아 늦은밤 그의 집에 머물게 된된다. 그들이 도움을 받은 현지인은 여장남자로 그도 과거에 떠난 자신의 애인을 매일밤 애도하고있었다. 두 친구는 다음날 눈이 그치고 유골을 뿌린 신사를 다시 찾으면서 소설이 끝난다.
사건은 대략 이런식인데, 죽은친구의 어린시절 유리를 깬 경험, 렌트카의 눈길운전에 대한 보험 처리 문제, 두 친구사이의 갈등, 수상한 여장남자가 보여주는 호의, 죽은친구의 짝사랑과 거절 같은 이야기들이 깔리면서 소설내내 긴장이 이어진다. 사건에 따른 서사를 중심으로 소설을 읽는 나는 미묘한 서스펜션 같은것이 있을듯 말듯 하다가 아무일 없이 소설이 끝나자 조금 당황했다. 주인공들도 뭔가 발상이나 언행이 바르지만은 않아서 감정이입이 쉽지 않다보니 감정선을 따라가지도 못했다.
결국 중요한 장면을 몇번 다시 읽었고, 이 소설은 서로간에 분명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과 세상, 그사이에 분명하고 단단한 무엇인가에 관한 것을 다루고 있는것으로 짐작된다. 여전히 이 소설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을 다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묘한 사건의 흐름속에 제각기 다른 사람과 요소들이 담겨 오묘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점이 재밌게 읽혔다.
자선 대표작
[오후만 있던 일요일 - 위수정]
60대 부부가 등장하고 아내가 주인공이다. 소설이 다루고 있는 것은 노화와 젊음이다. 소설엔 네 세대가 나온다. 주인공 부부, 그리고 치매로 양로원에 있는 시어머니, 셋째를 임신중인 딸, 그리고 딸의 손녀들. 볼때는 몰랐는데 각 세대는 모두 여자로 이어진다. 생각해보니 딸의 남편, 즉 사위도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소설은 손녀를 제외한 모든 세대의 사랑-성-출산 등 생산에 관한 이야기를 한번씩 건드리고 간다. 스치며 지나가는 경우도 있고 충격적인 사건으로 각인시키기도 한다. 주인공은 딸을 하나 낳고 산후 우울증에 시달린후 더이상 아이를 갖지 않았다. 그러나 60이 넘어 젊은 신예 남자 피아니스트에 빠지고 만다. 소설의 묘사는 대놓고 성적인 매력을 다루지 않지만 적극적으로 젊은 육체에 대해 묘사한다. 주인공은 피아니스트에게 한눈에 매료되고 팬클럽도 가입한다. 피아노 공연도 관람하고, 피아니스트와의 인사 자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데 소설은 집요하게도 젊은 피아니스트와 주변의 젊은 여자를 통해 젊음과 노화를 집요할정도로 비교하고 경쟁하는 구도에 빠뜨린다.
주인공은 여러 사건이 겹쳐 일어나는 혼란속에서 의연하게 대처하고 이겨내려고 하지만 마지막에 손녀들을 보며 돌아갈 수 없는 큰 벽 같은 것을 느끼며 소설이 끝난다. 이 소설도 제법 각기 다른 것들이 노화와 생산에 관한 주제로 연결하면서 오묘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는데 그 울림이 나에게 많이 와 닿았다.
우수상 수상작
[관종들 - 김혜진]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잘못들, 불의를 넘어가지 못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아파트 이웃들의 작은일에도 문제제기를 하며 주변사람들과 갈등을 겪는다. 주인공 부부는 이미 아파트 이웃과의 갈등으로 이사를 한차례 한 상태이다. 그러던 어느날 아파트 놀이터에서 학대가 의심되는 아이들이 눈에 띈다. 아이들에게 먹을 것도 나눠주고 말도 걸고, 부모와 대화도 나누고, 경찰도 불러본다. 하지만 별 문제다는 듯한 반응만 돌아온다. 부부에겐 딸이 있다. 딸은 어릴적 버스 사고로 다리를 절게 됐다. 딸은 나이가 들면서 주인공 부부와 멀어졌고 술에 의지하며 살다가 어느날 음주 교통사고를 낸다. 주인공은 딸이가 그렇게 된 것이 어릴적 버스사고가 날때 아무도 주의를 주지 않은 무관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의 행동이 맞는지 아닌지는 모호하게 드러난다.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들은 평범한 상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학대라고 단정할 상황이라고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이 정의감을 가지고 관리실에 문제제기를 하는 상황이 방법적으로 옳은것 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딸아이가 술에 빠진것이 사고 때문인지, 사람들의 무관심 때문인지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결말에 가면 이런 주인공에게 작가는 희망과 따스함을 비추면서 소설을 마친다. 어느날 주인공의 집 현관문에 누군가 ‘관종들’이라고 낙서를 남긴다. 주인공은 그 낙서를 지우지 않고 주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겠다고 다짐한다.
관종은 사실 주변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관심이 고픈사람, 어그로를 끄는 사람을 뜻한다. 이 방향이 바뀐듯한 표현은 타인에 대한 관심이 나에게도 돌아온다는 뜻을 내포한것이 아닐까 싶다.
솔직히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아다르고 어다르듯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관심이라는 주제로 억지로 꿰고 있다는 느낌이 있다.
[대부호 - 성혜령]
사회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정치적인 보수 신념과 신분역전이 가능한 카드게임, 후진국형 산업재해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어중간한 계층의 가족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주인공도 몰랐던 엄마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이야기도 흥미롭게 전개된다.
[겨울의 윤리 - 이민진]
불우한 운명의 주인공이 나온다. 부모님의 이혼이후 새 어머니와 살게 되지만 그럴듯한 이유로 절에 맡겨진다. 절의 생활은 지루하지만 평화롭지만은 않다. 절속의 사람도 저마다 조금씩 모가난 구석이 있다. 겨울이 오자 절은 고립되고 주인공은 금방 무너지고 만다. 그러고는 꿈같은 이야기를 거쳐 주인공은 다시 태어나는것을 선택한다. 절을 떠나 이름도 바꾸고 새 삶을 살고 있는 주인공은 사실 여전히 절을 벗어나지 못한다.
[실패담 크루 - 정이현]
페이스츄리 빵이 비유로서 등장한다. 겹겹이 층으로 되어 있는 페이스츄리 빵은 그 자체로 계층을 떠올리는 소재지만 그 빵을 부스러기 없이 깔끔하게 먹을수 있는 사람과 어떻게 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주인공의 넘을 수 없는 신분차이를 드러내는 수단이 된다.
주인공은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소설중엔 유명 로펌에서 수습기간을 보낸 뒤 규모가 작은 사무소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는 것으로 나온다.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는 것 자체로 주인공은 신분상승의 단계를 밟고 있지만 수습기간을 보낸 로펌에 취직하는데 실패한다. 주인공이 보기엔 함양미달이지만 출신이 좋은 수습동기들이 정식 채용 되었다.
페이스츄리를 부스러기 없이 깔끔하게 먹는 것으로 나오는 성지연이라는 인물이 주인공을 자신의 사회로 이끌기 위해 실패담 크루에 초대한다. 자신의 실패담을 공유하는 이 모임에서 주인공은 모임의 암묵적인 규칙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결말에서는 결국 모임에 더이상 나가지 않게 된다. 모임엔 주인공과 대조되는 인물로 제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는 타고난 재능과 매력으로 모임에 빠르게 흡수된다. 주인공은 제이가 불순한 의도가 있을것이라며 견제하는 한편 이목을 끄는 실패담과 그의 존재감을 부러워한다.
소설에는 불문율 또는 암묵적 규칙 같은것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주인공은 그것을 잘 지키기도 하고 잘 못지키기도 한다. 소설속 특정 커뮤니티나 사회적인 관계에서 주인공은 능력이 좋기도 하고 좋지 않기도 하다. 또한 상위계층을 동경하기도 하고 폄하하기도 한다. 주인공은 다소간 이중적인 인물이지만 자신의 실패에 관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그러면서 커뮤니티의 불문율을 뒤집는 방식으로 극복하려고 한다. 작가는 소설의 마지막에 주인공이 그런 행동들로 인해 고립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친다.
많은 인물이 등장하진 않지만 로펌에서 있었던 이야기, 실패담 크루의 이야기, 사람들의 실패담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 소설이다. 그리고 여러 이야기들이 시간순서대로 나열되며 단순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들고 주제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배열되어 있다.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때 - 함윤이]
강원도에 있는 작은 도시의 면사무소에서 일하는 주인공이 겪는 꿈같은 이야기이다. 민원 해결을 위해 선배 직원과 산위에 있는 천문대를 찾아가고 천문대를 사들여 살고 있는 사이비 종교인들에 관한 이야기다. 천문대가 주요 공간으로 중요하게 등장하지만 공간감이 확실히 와 닿지 않아서 소설을 읽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주인공의 이름은 노아다. 절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가 노아의 방주할 때 노아를 이름으로 붙여주셨다. 구조로만 놓고 본다면 산위의 천문대는 방주고, 방주를 만들었어야 할 노아는 방주 밖에 있다가 중요한 순간에 방주에 간다. 천문대에 있던 사이비 종교인들은 오히려 방주에 타고 있던 동물이다. 종교인들의 리더인 선화는 마치 동물처럼 검은색 털 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또 선화는 노아를 적이라고 부른다. 선화는 자신들이 쫓겨날 위기에 처할 날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때가 진짜 구원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었던것 같다. 산 아래에서 노아가 적대적인 민원문제를 갖고 자신을 찾아오자 세상이 변할 것이라 믿고 한바탕 소란을 피운다는 내용이다.
소설 뒤에 수록된 작가와의 대담에 따르면 진짜와 사이비,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함을 표현한 소설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소설엔 남욱이라는 경찰이 등장하는데 그는 자신이 경험한 말도 안되는 사건들을 그저 받아들일뿐이라고 언급 한다. 나도 그렇게 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