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해방과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로 구분된 남북분단, 그리고 대한민국 건국과 6·25전쟁을 겪은 우리나라는 이념에 따른 혼란의 시대가 나타나게 된다.
대한민국의 건국이 가지는 혁명적 의미는 적어도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일제와 미군정에서 벗어나 독립국가로 재탄생하여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는 주권 국가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독립을 향한 온 겨레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왕조시대의 백성이나 일제하의 차별받는 식민지 ‘신민(臣民)’, 미군정 치하 ‘패배한 적국의 전 식민지 시민(市民)’의 처지에서 나라의 주인인 ‘국민(國民)’으로 승격했으며 바로 그 국민을 자유롭고 평등한 주인으로 인정하는 민주공화국을 수립했다는 사실이다.
세 번째는, 그러한 공화국이 채택한 국가 이상과 이념이 공산주의나 군국주의식 집산주의가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을 최고 가치로 하고 재산권을 존중하는 자유민주주의였다는 점이었다.
이 세 가지가 다 바로 그 직전까지 있어 왔던 정치, 사회, 문화적 현실을 완전히 뛰어넘는 획기적인 변혁이었으며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 이전으로 회귀하기는 결코 불가능한 명확한 혁명적 구분선이 그어진 것이었다.
4·19봉기는 원래 이승만 전대통령이 주동하여 만들었던 대한민국의 헌법 질서를 바로잡자고 하는 동기에서 촉발된 충정 어린 의거였지, 대한민국을 뒤엎자는 혁명이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그 후속 정권들은 대한민국 헌법의 토대 위에서 이승만 정부가 미처 다하지 못한 민주 국가 건설과 수호, 발전의 과업을 계승한다는 애국 정신을 발휘하기보다는 이승만과 자유당 정부를 정치적으로 매도하는 것만이 마치 자기들의 존재가치를 돋보이게 하는 일인 듯 착각했다.
그런 얄팍한 정치적 계산에 함몰되어 대한민국의 국가적 초석을 마련한 반공 정치지도자로서의 이승만뿐 아니라 독립운동가로서의 이승만의 역사적 업적까지, 기리기는 고사하고 등한시하거나 폄훼하기 시작했다.
2008년 8월 15일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6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를 야당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공공연하게 거부하고, 건국 60주년 행사를 반대하는 헌법소원까지 내면서 건국회가 주동이 되어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기로 기획되었던 국민대축제가 광복회의 방해로 무산되는 불상사까지 일어났다. 국가건설을 통한 자주 독립이 없이도 과연 일제로부터의 해방만으로 광복의 의미가 제대로 살 수 있는지,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는 대한민국 건국을 기리는 일이 어떻게 임시정부 구성원들이나 그 밖의 독립운동에 헌신한 분들에 대한 모독이 된다는 것인지 상식으로는 납득 가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의 기본가치를 이념으로 하는 독립국가로 수립되어 유엔의 공인을 받은 한반도 유일의 합법적 국가였다. 하지만 태생에서부터 공산권의 집요한 대내외적 파괴공작에 직면해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 자유를 무한으로 허용할 수는 없었고 그것은 바로 자유민주주의적 기본가치를 훼손시키게 되는 악순환을 안고 살아야 함을 의미했다.
역사를 정치의 도구로 악용하려는 세력과의 싸움은 또 다른 직접적 차원, 곧 정치적 차원에서도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자유와 전체주의의 갈림길에서 향방이 그 싸움의 결과로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대한민국의 새 세대에게 올바른 역사인식을 심어줌으로써 역사 변화의 격랑 속에서도 통합된 인격체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심어주는 일이 무엇 보다 시급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