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부터 1908년까지 10여년간 경상남도 하동의 평사리에서 5대째 대지주로 군림하고 있는 최참판댁과 그곳의 소작인들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나 1894년 4월과 7월, 잇따라 발생한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개혁, 그리고 그 이전부터 시작된 일제에 의한 개항과 수탈ㄷ 등이 토지 전반의 사시적이고도 역사적인 배경이 된다. 동학군 장수 김개주와 최참판댁 안주인 윤씨부인 간의 비밀이 풀려가면서 관련 인물들 사이의 갈등이 고조된다. 귀녀와 평사 등은 봉건의 숙명이던 신분제에 대한 불만과 개인적 욕망에 뒤섞이어 최치수를 살해하고, 역병의 창궐과 대흉년, 조준구의 계책 등으로 인해 최참판댁은 결국 몰락한다. 서희는 조준구 세력에 대항하던 망르 사람들과 함께 간도로 이주한다. 솔직히 말해서 그동안 나는 토지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생각하는것도 말하는것도 지겨웠고 부담스런 짐을 부리고 싶었다. 심지어 토지문화관에 관해서도 소설과는 무고나하며 토지공사에서 지었으니 토지라, 신경질적으로 주잫하기도 했다.또 그것은 사실이기도 한다. 어느 특정한 작가나 작품의 몫이 전혀 아니며 예술가, 학문하는 분둘이 활용하는, 다만 그런곳이기 때문이다. 그해 그러니까 토지르 끝낸 그때도 나는 해방감 성취감을 늑지 못했다. 그냥 멍청히 않아 있었다. 방향조차 잡을 수 없었고 막막했던 길 위에서,폭풍이 몰고 간 세월이 끔찍하여 그랬을가. 생각해보면 토지의 운명도 기구했다. 25년 동안 여러 지면을 전전했고 4부까지 출간되었으나 3년 동안 출판 정지, 절필한 일이 있었다. 완간이 된 뒤에도 출판계약이 끝나면서 3년간 책을 내지 않고 절판 상태를 애써 외면했다. ㅈ가품이 나간 이상 독자에게는 ㅇ릭을 권리가 있고 이미 작가 손에서 떠난 거라며, 꾸지람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구세대에 속하고 편협한 나로서는 문학작품이 자본주의 원리에 따라 생산되고 소비되는 온르의 추세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상인과 작가의 차이는 무엇이며 기술자와 작가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차이가 없다면 결국 문학은 죽어갈수밖에 없다. 의미를 상실한 문학, 맹목적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삶, 우리는 지금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책이 다시 나가게 되니 마음은 석연찮다. 자기 연민이랄가. 자조적이며 투항한 패잔병 같은 비애를 느긴다. 나는 왜 사람이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