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지인이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라는 책을 추천해주어 읽은 적이 있었다.
우리 사회의 우상받는 '성과주의' 패러다임을 '스스로 착취하는 패러다임'으로 해석한 것이 정말 충격적이고 신선했다.
'피로사회'에서 제시한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라는 명제가 『불안사회』에서는 다시 이 시대의 질병을 ‘불안’이라 진단한다. 불안이 잠식한 사회에서 끊어져 버린 연대와 만연한 혐오에 경종을 울린다.
저자는 불안을 체제적으로 사용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희망하는 법을 잃어버렸고, 불확실성과 깊은 무기력에 빠진 현대인의 삶에 필요한 것은 ‘희망’임을 강조한다. 불안에 잠식되어 미래를 그리지 못하고 과거의 트라우마에 빠져 허우적대는 삶은 그야말로 ‘생존의 삶’ 그 뿐이라고 한다.
실패에 대한 불안, 소외에 대한 불안, 도태에 대한 불안…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그저 살아남기 위해 달려간다. 문제는 질병처럼 창궐하는 불안이다. 엄습하는 정체 모를 위협감에 대화와 경청, 공감과 화해가 붕괴된 사회는 감옥과 다름없다고 한다.
-- 아래 주요 내용 발췌 ------
불안은 훌륭한 지배 도구다. 대중을 순종하게 하고, 공갈에 취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불안한 분위기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없다. 이는 억압에 대한 불안감에서 기인한 것이다. 불안을 공공연히 부추기는 혐오 발언은 자유로운 의견 표출을 가로막는다.
사유는 ‘완전히 다른 것’에 대한 접근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불안의 분위기 속에서는 같은 것들끼리 순환한다. 대세 순응주의가 만연해진다. 불안은 ‘다른 것’으로의 접근을 차단한다. 다른 것은 ‘동일한 것’의 논리에 해당하는 효율성과 생산성의 논리를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희망적 사유는 낙관적 사유와 다르다. 희망과 달리, 낙관주의에는 부정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낙관적 사유에는 의구심도, 절망도 없다. 완전한 긍정이 낙관주의의 본질이다.
낙관주의는 어떠한 것이 좋은 쪽으로 흘러라고 굳게 확신하는 사유 방식이다. 따라서 낙관주의자에게 시간은 닫혀 있다.
낙관주의자는 닫혀 있지 않은 미래, 가능성의 여지로서의 미래를 알지 못한다. 다시 말해, 낙관주의자에게는 새로이 발생하는 것이 없다.
낙관주의자에게 놀라움을 안겨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에게 미래란 ‘처리 가능한 대상’이다. 그러나 실제 미래라는 시간은 ‘처리 불가능성’ 안에 존재한다. 낙관주의자는 손에 잡히지 않는 먼 곳에는 시선을 주지 않는다. 이들은 기대하지 않은 것 또는 예측 불가능한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