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책 중 하나가 된 채식주의자는 마치 프랑스 혁명, 518 민주화 항쟁처럼 기존의 질서에 선을 긋는 혁명적이고 선언적인 행위로 시작한다. 영혜의 채식주의 선언은 취향의 문제나 개인의 다짐의 문제를 넘어서 기존 질서와의 단절, 폭력, 야만, 차별, 잔인, 그 원초적인 것들로 부터의 단절을 의미한다. 그리고 영혜는 채식주의 선언으로 가장 가까운 관계인 배우자에게 억압받고 고통받는다. 모든 혁명적인 것들이 그러하듯 기존의 기득권과 질서와의 단절은 저항을 동반한다. 영혜의 채식 행위는 나아가 육식 뿐만아니라 모든 음식 섭취를 거부하는 절식까지 나아가고 그 궁극적인 목적은 채식이 아닌 식물이 되는 것으로 귀결된다. 식물은 살육과 희생, 폭력과 억압에 반대 개념으로 궁극적인 저항과 순교를 의미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선을 긋는 행위와 순교 사이에는 단계적인 행위들이 나오는데 몸에 꽃을 그리고 식물이 되는 중간 단계를 갈구한 행위가 예술과 결합되어 나타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형부는 영혜의 저항 과정을 도와주는 조력자인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영혜는 본인이 의지한 바로 나아가고 뻗어나가는 한 방향의 의식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데 반에 그 과정에서 형부의 모습은 조력자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욕망과 결합되어 변질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영혜의 언니인 인혜의 관점에서 기술되는데 인혜는 모든 사건을 기록하는 기록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기록은 고통이며 기록자는 혼란과 혼동을 느낀다. 기록하는 자는 지켜보는 것 만으로 큰 저항과 감정적으로 큰 변곡점을 지나게 된다. 소설의 구조를 따라가다 보면 끊임없이 반복되는 역사의 순환을 마주하게 되고 또 숨죽여 지켜보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역사는 반복된다. 소설 속의 선을 긋는 행위는 영혜의 죽음으로 귀결될 것이다. 결국 아무것도 아무 일도 아닌 일이 되지 않을까, 그럼에도 역사는 반복되고 저항을 반복되고 그런 익숙한 것들이 쌓여서 조금씩 변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