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눈으로만 텍스트를 읽는 편인 저도 이 책은 각 장마다 필사하고 싶은 문장이 가득해서 펜을 들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소설 내용으로 들어가면...
주인공 '안진진'을 보면서 낙관적이라 해야 할지 강인하다 해야 할지... 참으로 묘했다.
제가 겪었다면 뒷목 잡고 쓰러질 법한 상황들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동생이 살인미수로 수감되었을 때보다 남편감 고르는 데에 더 큰 에너지를 쏟는 모습, 그리고 평생 헌신한 어머니보다 술 취해 가정폭력을 저지르더니 나중엔 집을 나가 행방불명된 무책임한 아버지에 대해 더 깊은 애정을 품는 모습은 참 씁쓸했다.
읽는 내내 진진이 결국 김장우가 아닌 나영규를 선택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는데, 역시나 예상이 빗나가질 않았다.
김장우는 진진의 아버지를, 나영규는 진진의 이모부의 모습을 투영한 인물로 그려진다.
진진에게 있어서 결혼은 단순히 배우자를 고르는 문제를 넘어서 어머니의 삶과 이모의 삶 중 어느 길을 걸어갈 것인지 결정하는 선택이었던 거 같다.
결국 진진은 이모의 죽음을 목격했음에도 평생 동경해오던 이모의 삶을 선택했다.
하지만 진진이의 성격상 나영규와의 결혼생활이 행복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계획적이고 성실한 사람을 선호해서 제가 진진이라면 고민도 없이 나영규를 선택했을 것이라 생각하며 소설을 읽어 내려갔는데 말미에 비친 나영규의 모습에 충격받긴 했다.
진진이의 아버지의 발병 소식을 듣고서 본인의 계획이 어긋나는 것에 대한 불편함부터 드러내는 걸 보고서는 좀 너무하다 싶었다.
진진의 이모도 겉으로 보면 완벽한 듯 보이는 이모부에게서 이런 이면을 보았기 때문에 남들은 부러워하는 삶을 살았지만 항상 숨이 막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진진이 하는 이야기가 때로는 궤변처럼 느껴지고 두 남자를 저울질하는 모습을 보면서 불쾌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안진진이라는 사람의 선택과 행동을 끝내 이해할 수 있는 건,
우리의 삶도 옳고 그름에 의해서만 명쾌하게 나뉘지 않는 모순투성이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 역시도 “모든 것이 너무 갑작스레 변해버린 요즘, 불안하고 당황스럽기만 한 시절에, 소설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용기를 잃고 주저앉은 사람들에게 무언가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어 이 소설을 시작했으나, 모순으로 얽힌 이 삶은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라고 ‘작가노트’를 통해 밝히고 있으니, 1998년, 그해의 위로처럼 이 소설이 오늘도 많은 독자들에게 선택 당해서 새롭게 인생을 해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