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정치인 도도와 전직 배우 에리코 부부의 집이 불타고 두 사람은 주검으로 발견된다. 하지만 부검 결과 두 사람의 사인이 방화로 인한 질식사가 아닌 교살로 밝혀지며 타살 정황이 포착된다. 이에 지역 관할서와 일본 경시청이 함께하는 대대적인 수사본부가 꾸려지나 사건은 조금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자신이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인물의 협박 편지가 도착하며 사건은 더욱 미궁에 빠지고 만다. 한편 사건을 맡은 고다이 형사는 뜻밖의 인물에게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사건에는 무언가 커다란 비밀이 있음을 직감하는데…….
“아까 유령을 쫓는 것 같다고 하셨죠. 이 상황을 말씀하신 건가요?”
“그래,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찾아다니는 모양새라 허탈하다는 뜻으로 말이지.” 그렇게 말하고 쓰쓰이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군. 우리는 가공의 범인에게 휘둘리고 있는 게 아닐까?”
“가공의 범인…….”
“물론 큰 소리로 말할 수는 없지만.”
촘촘하고 치밀한 구성,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 허를 찌르는 반전 모두 히가시노 게이고의 커다란 강점이지만 독자의 가슴을 울리게 하는 ‘휴먼 미스터리’야말로 작가의 전매특허다. 『가공범』에는 이 매력이 더욱 잘 발휘되었다. 범행의 동기와 방법, 범인 찾기가 골자인 미스터리 소설이지만 작가는 인간 본성의 다채로운 감정을 현실감 있게 그려 냈다. 변화하는 시대, 복잡다단한 인간사, 거기 얽힌 크고 작은 사건들과 저마다의 사연은 독자에게 마음속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만년이 된 히가시노 게이고는 인간의 특수성보다는 보편성으로 무게중심을 옮겨 갔다. 경제의 흥망성쇠, 세대 간 갈등, 연인과 가족의 애정 등 전 세대가 겪었을 보통의 경험에 기반하여 굵직한 이야기를 완성해 냈다. 그의 수많은 작품 가운데 소설의 본령에 가장 충실한 작품이라 할 만하다. 『가공범』은 자신을 잘 노출하지 않는 수수께끼에 싸인 작가지만 사회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주변의 이야기를 작품에 녹여 내는 인간 히가시노 게이고의 매력이 소설가로서의 완숙함과 함께 빛나는, 그의 새로운 대표작이 될 작품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