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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투원(리커버에디션)
5.0
  • 조회 138
  • 작성일 2026-05-06
  • 작성자 박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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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가까이 회사에 몸담아 온 사람에게 '창업’이라는 단어는 설렘보다 두려움이 먼저 찾아온다. 퇴직이 머지않은 시점에서 피터 틸의 제로 투 원을 펼쳤을 때, 나는 젊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위한 책이라 지레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읽어 내려갈수록 이 책이 묻는 본질적 질문은 나이와 무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피터 틸은 이 세상의 진보를 두 가지로 나눈다. 이미 효과가 입증된 것을 복제하는 '수평적 진보’와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드는 '수직적 진보’가 그것이다.

그가 말하는 0에서 1로의 도약은 단순히 기존 제품을 약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없던 가치를 처음 창조하는 일이다. 돌이켜보면 직장 생활 내내 나는 기존 프로세스를 조금씩 효율화하는 '1에서 n’의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퇴직 후 무언가를 시작하려 한다면 이 관성부터 깨야 한다는 점이 뼈아프게 와닿았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독점에 대한 저자의 관점이다. 우리는 경쟁이 바람직하다고 교육받았지만, 틸은 경쟁이 심한 시장은 이윤을 파괴한다고 단언한다. 작은 틈새시장에서 확실한 점유율을 확보한 뒤 인접 시장으로 확장하라는 조언은, 대규모 자본이 없는 퇴직 예정자에게 오히려 현실적인 전략으로 다가왔다. 너무 작다 싶을 만큼 작게 시작하되, 그 안에서 독점적 위치를 갖추라는 것이다.

수백만 명의 주의를 끌려 하기보다 정말로 내 제품이 필요한 소수에게 집중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는 말은 거창한 사업 계획에 압도당하던 마음을 다잡아 주었다. 또한 모든 기업이 반드시 답해야 할 일곱 가지 질문 즉, 기술, 시기, 독점, 사람, 유통, 존속성, 숨겨진 비밀 등은 창업을 구상하는 사람이라면 거울처럼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점검표다. 그 중 '제대로 된 팀을 갖고 있는가’라는 물음 앞에서 한참을 멈추었다. 틸은 공동 창업자가 기술적 역량만큼이나 서로를 얼마나 잘 알고 협업하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제 50대인 나에게는 수십 년간 쌓아 온 인적 네트워크가 있다. 그것이 단순한 인맥이 아니라 진정으로 함께 일할 수 있는 관계인지를 가려내는 것이 곧 팀 구성의 출발점일 것이다. 회사를 성공시킬 계획도 없으면서 왜 회사가 성공할 거라고 기대하는가? 이 문장은 막연히 '퇴직하면 뭐라도 해봐야지’라고 생각하던 나를 정면으로 꿰뚫었다. 스타트업은 로또가 아니며, 운에 기대는 대신 명확한 계획과 비전을 가져야 한다. 남은 직장 생활이 단순히 시간을 채우는 기간이 아니라, 미래의 한 가지를 독점하기 위해 치열하게 준비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게 되었다. 이 책은 열정을 북돋우기보다 생각을 멈춘 채 달려가는 사람에게 잠시 멈추라고 말하는 책이다. 나이 쉰에 읽어도 늦지 않았다. 아니, 인생의 두 번째 막을 여는 지금이야말로 0에서 1을 고민할 적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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