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채식주의자
한 여성이 채식주의를 선언하면서 내용은 시작한다. 다분히 개인적이면서도 어쩌면 반사회적인 행동일 수 있는 내용을 세밀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신체와 정신 사이에 발생하는 괴리를 잘 표현했다. 주인공의 채식주의 선언에 합리적인 설명은 없어, 왜 그렇게 해야만 하는 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러한 상황 연출을 통해서 오히려 사람 간 갈등 요소를 극대화해주고 있다. 점차 가족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고립되어가는 과정이 서술되어 있다. 결국 주인공도 더 이상 상대방을 설득하려하지 않고, 이해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소설에는 남편과 형부, 언니 세사람의 시각에서 주인공을 바라보고 있다. 이들 세사람은 각자 개인의 시각과 관점으로 주인공을 이해하려 하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한다. 결국 주인공은 이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파국적인 결말을 맺게된다. 단절의 정도는 점차 더 심해지고, 주인공의 사회적 고립은 악화되었다. 이러한 세사람의 시각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시각이라는 점에서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사실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아,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에 대한 나의 편협한 시각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다. 현실을 적절히 반영하였기에, 소설에서의 묘사가 설득력이 있어, 인간의 사회화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개개인별로 갖고 있는 개성 또는 가치관으로 보통의 사람들의 획일적인 잣대가 모두에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그 보편적인 잣대가 개별 개성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할 때 우리는 간혹 파괴적으로 바뀌는데, 그 경계가 궁금해 졌다. 가족은 해체되고, 사랑은 퇴색하며, 인간은 홀로 남는다. 이러한 과정은 작가 특유의 건조하고 절제된 문체로 묘사되는데, 오히려 그 무덤덤함이 독자에게 더 큰 불편함과 슬픔을 준다. 폭력은 적나라하지 않지만 그 여운은 길다. 육체와 정신, 꿈과 현실, 인간과 식물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상징적 서사는 불쾌할 정도로 아름답다. 주인공은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주변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