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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5.0
  • 조회 220
  • 작성일 2025-07-04
  • 작성자 송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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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삶과 죽음, 기억과 부재, 존재와 흔적을 흰색이라는 상징을 통해 천천히, 그러나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산문이자 시적 에세이다. 작가는 흰색에 속하는 사물들(눈, 소금, 뼈, 달, 흰 천, 아기의 내복 등)을 하나씩 불러내며, 각각의 단어 속에 응축된 기억과 감정, 존재의 잔향을 묵직하게 꺼내 보여준다.

이 책은 작가가 실제로 죽음을 맞이한 언니를 기억하며 시작된 글이라 한다. 태어나자마자 죽은 언니를 향한 삶과 존재에 대한 사유는, 한 사람의 죽음이 남긴 자리에 대해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든다. 흰색은 여기서 단지 색이 아니다. 그것은 죽음을 상징하면서도 동시에 순수함, 시작, 비어 있음, 혹은 잊히지 않는 상처를 의미한다. 흰색은 모든 것을 삼켜버린 듯하지만, 그 안에는 오히려 수많은 감정과 이야기, 기억이 숨어 있다.

한강의 문장은 매우 절제되어 있으며, 간결하다. 그러나 그 간결함 속에 담긴 감정은 너무도 깊고 무겁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기”를 시도하는 듯한 이 책은, 오히려 침묵 속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문장 하나하나가 마치 오래된 상처를 천천히 짚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고, 그 덕분에 독자 역시 자신의 상실과 고통을 떠올리게 된다.

"흰"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머물며 쓰인 책으로, 낯선 도시의 겨울과 흰색의 이미지가 겹치며 더욱 강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 공간은 생소하면서도 익숙하고, 차가우면서도 따뜻하다. 그것은 마치 죽음을 품은 삶처럼, 혹은 삶을 놓친 죽음처럼 모순되지만 아름답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쉽게 말할 수 없다. 아름답다고 하기엔 너무 슬프고, 슬프다고 하기엔 너무 고요하고, 고요하다고 하기엔 그 안에 너무 많은 떨림이 있다. "흰"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며 외면하거나 묻어둔 감정들—가까운 사람의 죽음, 말하지 못한 사랑, 잊힌 존재, 억눌린 고통—에 대해 정직하게 직면하게 만드는 책이다.

한강은 이 책을 통해 죽음과 삶을 마주하는 아주 독특한 방식을 제시한다. 직접적으로 설명하거나 위로하지 않지만, 흰색이라는 매개를 통해 독자 스스로 그 감정을 느끼고 사유하게 만든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오히려 책장을 덮고 나서야 마음속에서 파문처럼 퍼지는 감정들이 있었고, 그것은 아주 조용히 나를 위로해주었다.

"흰"은 단순히 흰색에 대한 이야기나, 상실에 대한 슬픔만을 담고 있는 책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과 애도의 방식이며, 존재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가장 조용하고 깊은 헌사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존재하지 못한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마음 깊이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조차도 삶의 일부라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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