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후 꼭 읽어보고 싶었떤 책이다. <소년이 온다>라는 책을 읽은 이후 한강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만났기에 더 반가웠다. 하지만, 사전에 이 작품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기에 읽으면서 다소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 작품을 읽었던 시간이었다. 가족이라는 집단을 구성하는 우리들은 얼마나 서로를 알고 있을까? 부부, 부모와 자식, 형제들은 얼마나 서로를 이해하는 집단일까? 이 작품의 친정아버지가 결혼한 딸에게 빰을 때리는 장면은 영혜라는 딸에게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베트남 참전용사인 친정아버지. 그의 자랑하는 모습과 딸들에게 보여준 폭력성과도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뺨을 맞고, 폭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었던 두 자매를 계속 부여잡으면서 작품을 다시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게 한 소설이다. 영혜의 긴 시간들을 차분히 떠올려보게 한다. 성장기와 결혼생활, 그녀의 표정과 말까지도 우리는 떠올려보게 한다. 그녀가 채식주의자가 된 이유, 남편이 아내인 영혜를 타인처럼 거리를 두기 시작한 병원에서의 모습까지도 기억하게 한다. 사건이 일어나서 병원으로 실려간 그날 영혜는 철저하게 혼자였음을 작품은 짚어준다. 부모도, 남편도, 형제들도 영혜의 식습관에 이해보다는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강요하며 억압하는 모습이 폭력적으로 일어나는 날이었다.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 것에, 이유에 대해서도 사회가 보는 시선은 부드럽지 않았다는 것을 자주 만나게 된다. 남편이 아내를 바라보는 시선과 관점도 자기중심적인 모습이었다. 사랑하니까, 함께 여생을 보내고자 하는 결혼이 아닌 결혼생활이 얼마나 건조한 것인지 이 작품의 부부을 보면서 느끼게 한 작품이기도 했다. 언니 부부의 모습에서도 놀라움과 실망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남편의 무책임한 행동들은 아내와 자식에게도 서슴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감정을 끝없이 숨기면서 인내하는 아내의 모습도 위태롭기까지 했다. 아들이 꿈을 꾸고 나서 엄마품에서 우는 날 그녀가 아침에 보여준 모습들. 두 자매의 외줄타기 곡예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생각해 보게 한 작품이었다. 영혜의 모습이 곧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인지한 언니의 삶도 아프게 그려지는 소설이었다. 아이가 아빠가 집에 있냐는 질문에 그녀가 아이에게 대답하는 대화도 결코 가볍지가 않았던 장면이었다. 우리집에 아빠 있어? 아이가 아침마다 던졌던 질문. 없어. 아무도 없어. 너랑 엄마만 있는 거야. 언제까지나 그럴 거야.
자신의 삶을, 인생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것과 견뎌왔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짐작해 보게 된다. 두 자매의 인생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생각하게 한다. 썩어서 문드러진 시체 같은 꿈속의 얼굴이 곧 자신이었다는 영혜의 말은 큰 웅덩이가 된다. 육체만 있을 뿐 영혜는 이곳에 있지 않다. 그녀가 꾼 꿈들의 얼굴들과 언니가 꾸는 꿈속의 자신의 얼굴도 상징적으로 전달된다. 썩어서 문드러진 시체 같은, 피투성이일 때도 있고, 아주 낯익은 얼굴, 낯선 얼굴... 달랐던 꿈속의 얼굴 유독 꿈이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타인의 시선들과 인물들의 눈이 자주 등장한다. 작품은 사회가 강직하게 보여주는 문화와 규율, 규범, 당위성, 타인의 시선과 시기와 의심, 혐오들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촘촘하게 등장시켜준다. 무책임하고 방관하는 가족들의 모습들도 놓치지 않는다. 이해하는 모습은 찾을 수 없고, 정신병원에 넣은 사람이 가족이었다는 점도 놓치지 않는다. 강압적이고 폭력적으로 치료하는 모습이 최선이었는지도 질문하게 된다. 육식을 강요하는 가족의 모습들, 채식을 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시선은 호의적이지는 않는 모습이 작품에 흐른다. 나와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배타적인지 사회인지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