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랑 시집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특이하게 느낀 것은 시에 제목이 없고 일련번호가 달려있다는 것이었다. 영랑 시집은 김영랑과 '시문학' 동인으로 참여하고 문학적 교류를 나누던 박용철이 운영하던 시문학사에서 1935년에 간행되었고 70여쪽에 걸쳐 53편의 작품이 실려있는데, 여기 실린 작품들은 거의 '시문학'과 '문학'에 발표된 것이지만, 김영랑은 발표한 시에 제목을 한번도 붙인 적이 없고 일련번호로만 구분한 것이 특색이라고 한다. 그래서 보통 첫줄의 구절이 제목으로 뽑혀 쓰는 편이나 예외적으로 <꿈 밭에 봄 마음>은 마지막 줄을 제목으로 하고 있다.
내가 시인의 생가를 방문한 곳은 옥천 정지용 생가와 강진에 있는 김영랑 생가 두곳 뿐이다. 두분이 동년배이면서 시문학 동인으로 같이 활동을 하였고 같은 시기에 납북이 되는 등 비슷한 점이 많아 신기하다. 아마도 두 분의 시적 감성이 나와 맞아 좋아해서 나도 모르게 두 분의 생가까지 방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5월인 요즘은 모란 꽃이 한창인 시기라 며칠 전 거리에서 파는 예쁜 모란 꽃을 사다 식탁 위 화병에 꽂아 놓고 행복해 했고 꽃이 너무 빨리 져서 서운해 한 기억을 떠올리며 '모란이 피기 까지는'을 읽어본다. 나는 모란 꽃에 대해서는 선덕여왕과 모란 꽃의 이야기만 알고 모란 꽃을 알지 못했다. 당 태종이 나비와 벌이 없는 모란 그림을 보내오자 선덕여왕께서 모란은 향기가 없는 꽃일거라 했다고 한다. 그러나 향이 가득한 이 꽃을 전통적으로 나비와 벌을 넣지 않는 그림을 그려왔다고 한다. 모란 꽃은 화려하지만 언제 핀지도 모르게 빨리 지고 그 화려한 꽃잎도 검게 그을려 사라져버리니, 아름다운 모란 꽃이 다시 피기까지 일 년의 기다림과 설레임, 아름다움에 감탄과 환희, 너무 빨리 져서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쓸쓸함을 시 한편에서 느낄 수 있다니 놀라운 경험이다.
김영랑의 시는 잘 다듬어진 언어, 부드러운 율격과 음악성, 남도 사투리와 여성적 어조, 암시적인 언어의 음영, 은밀하게 스며들어 오는 이미지들을 이용하여 삶의 비애와 고통을 순화된 마음의 풍경으로 표현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랑시집을 읽으면서 언어의 시대적 간격, 사투리, 맞춤법, 띄어쓰기 등이 현대적인 언어과 다르지만 시대를 초월하여 김영랑 시인의 아름다운 언어와 감성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