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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고려사 1
5.0
  • 조회 209
  • 작성일 2025-07-25
  • 작성자 손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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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6년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약 100여년간 태평성대 시절을 보냈다. 불국사가 창건되고, 석굴암이 만들어 지는 등 문화 예술에서도 수준높은 경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신라 말시 시대 사회질서 근간인 골품제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중앙권력이 약해지고, 각지에 지방권력이 발달하자 나라는 어지러웠고 농민의 반란과 호족들의 부정부패가 일상이었다.
상주출생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하고, 경문왕의 아들로 왕자로 태어났으나 버림을 받고 불교계로 출가하여 중이되었다가 고구려의 후예 고려를 건국하게 된다.
궁예나 견훤은 자수성가한 타입인데, 그래서 그런가 정권 획득에는 능해도 정권 유지에 취약했다.
왕건은 홍유, 배현경, 신승겸, 복지겸과 함께 궁예를 폐위시키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다. 날 때부터 은수저를 물고 난 왕건은 호족 연합체를 관리해야 했고, 아내를 27명이나 둬야 했다.
견훤은 왕건과 평생 대결하고 신라를 점령하였지만 아들이 쿠데타를 일으키자 왕건에게 귀순했다. 왕건과 태자 다음으로 견훤을 대우해줬다.
신라 왕이 귀순하자 이번엔 왕건과 태자 사이에 끼워주었다. 신라는 천년 왕국으로 상징성이 있었고 확실히 왕건이 정무 감각이 있었다.
견훤은 쿠데타를 일으킨 신검을 왕건이 죽이지 않자 홧병으로 죽었다.
드디어 왕건은 삼한을 하나로 통일하게 된다. 고려국의 태조인 왕건은 고구려 계승하고 기인제도를 시행하며 호족 세력들을 관리하였다.
왕건이 훈요10조를 남기고 죽자 왕건의 세 아들이 2-4대까지 왕이 되었다. 혜종, 정종, 광종의 순이다. 광종이 비교적 오래 재위하면서 왕권을 다졌는데, 신라 왕실의 문화적 분위기를 답습해서 그런지 근친혼이 많았다. 이복남매나 사촌끼리 결혼하고 그랬다. 조선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광종은 5대 10국 시대로 혼란스러웠던 중원의 인재들을 들여기도 했고, 이는 기존 세력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왕들은 보면 주기적으로 왕권 강화를 시도한다. 사실 왕이란 직업이 그것 말고 더 할 게 없기도 하다.
광종은 노비안검법을 제정하고 노비를 농민으로 풀어주었으며, 과거제를 시행하여 인재를 등용하였다. 이떄 자연스럽게 호족을 세력이 약해지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
광종이 죽고 아들인 경종이 올랐는데, 경종의 아내 둘이 친남매였고 경종의 사촌이기도 했다. 경종은 죽으며 왕위를 자기 처남 겸 사촌에게 넘겼고 이 사람이 성종이 된다. 성종은 경종의 아버지인 광종의 사위이기도 해서 경종의 매제이기도 했다. 족보가 참. 아무튼 조선 시대에서 보자면 개족보에서 태어난 성종은 유교 통치 스타일을 고려에 주입했다.
당시 북방의 위협은 거란이었다. 거란은 중원을 털어 먹고 있었고, 후방을 안정화하기 위해 발해를 멸망시켰다. 지금은 인터넷 밈 때문에 싸이버거랑 엮이고 있지만 말이다. 소태후는 병약한 황제 남편 대신에 정무를 보고, 이후 아들의 섭정을 맡았다. 소태후가 대단한 건 그 당시에 여인의 몸으로 갑옷을 입고 송나라와의 전쟁에 친정했단 점이다. 역시 유목민족은 상여자와 상남자 밖에 살아남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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