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사교계 여인인 49살 레아와 레아의 친구의 아들인 25살 셰리(애칭)의 사랑이야기다. 그들의 사랑이야기로 나이차이를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랑에 나이가 중요한가.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나이차이라는 껍질을 쓴 근본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내용이 광장이 섬세하다. 간식, 모자, 드레스까지 작은 사물 하나에도 이름을 넣으며 소설의 세계를 깊게 만든다. 상상할 재료를 줘서 이세계를 상상하게 만든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글이 우아하게 느껴지는것도 신기한 요소이다. 특히 마지막에는 그들의 폭발하는 감정과 숨기고 싶어하는 것들의 표현이 좋게 느껴진다. 내가 이들의 사랑을 보면서 의아하게 생각한 점은 나이가 아니었다. 세리가 어머니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레아를 통해 충족 받는 것 같은 느낌을 계속 받아서 그들의 사랑이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셰리는 레아를 누누(유모)라고 부른다. 그는 어머니에게 정상적인 양육을 받지못했다. 그런데 레아를 누누라고 부르는것은 아마 어머니에게 충족되지 못한것을 레아를 통해 충족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셰리가 단순한 애정결핍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지만 크게 관심이 없고, 아무 여자에게나 추파를 던지지도 않는다. 그러다 셰리가 결혼하게 되자, 레아는 기약 없는 여행을 핑계로 셰리를 떠난다. 이 과정에서 셰리가 레아에 대한 사랑을 확신하게 된다. 사실 레아도 자신이 셰리를 그 정도로 사랑하는지 몰랐지만 여행에서 돌아와 그와 재회하면서 자신의 사랑의 크기를 깨닫는다. 그들은 재회 후 어느 사랑 이야기가 그러하듯, 사랑은 모든 것을 이겨낼수 있다는 듯이 서로 사랑을 한다. 하지만 점점 넘을수 없는 문제를 직면하게 된다. "누누랑 있으면 난 반세기 동안 열두 살일 수도 있을 거야."
셰리가 12살이면 레아랑 몇 살 차이가 나는 걸까. 레아는 다시 그들의 나이차이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사실 레아는 어린남자를 만나는 것에 대해 큰 거부감이 들었던게 아니지만, 셰리와 진정한 사랑을 나누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25살이 넘은 나이에도 어린애 같은 모습을 보이는 셰리가 자신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셰리의 어둠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결국 레아는 나이차이 때문이 아닌, 셰리를 생각해서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견혼한 여자에게 돌아가라고 한다. 레아는 셰리의 이런 불안정함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레아 자신에가 잘못했다고 말하라고 셰리에게 시키는 모습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레아는 셰리의 불안정함을 알고 있지만, 그것이 자신의 탓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에서야 그것을 알게된것 같다. 사랑이란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사랑을 말하기에 성숙한 나이는 몇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