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에 맞서는 인간의 본능적 시도]
책의 전반부는 조던이 물고기를 분류하고 명명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당시 지진과 화재로 인해 표본들이 끊임없이 파괴되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조던은 굴하지 않고 다시금 물고기들을 수집하고 분류하는 데 몰두한다. 이는 단순히 과학적 탐구 이상의 행위로 비쳐진다. 루루 밀러는 조던의 이러한 집념을 혼돈에 맞서 질서를 부여하려는 인간의 본능적인 시도로 해석한다. 세상은 예측 불가능하고 무작위적인 사건들로 가득 차 있으며, 인간은 이러한 혼돈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자신만의 규칙과 범주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조던에게 물고기 분류는 그의 세계를 지탱하는 일종의 정신적 지지대이자, 무너진 질서 위에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행위였다.
조던의 이러한 노력은 과학적 진보의 긍정적인 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고 통제하려는 깊은 열망을 드러낸다. 그는 이름 없는 존재에 이름을 부여하고, 무질서해 보이는 배열 속에서 패턴을 찾아내며, 복잡한 생물 다양성을 체계화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이는 혼돈을 마주한 인간이 지성을 통해 구축하는 질서의 아름다움과 효용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가 만든 수많은 도감과 분류 체계는 후대의 과학자들이 생물학적 지식을 확장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질서 부여는 완벽할 수 없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외부의 충격은 조던이 세운 견고한 분류 체계를 뒤흔들었다. 지진으로 인한 표본 손실은 그의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들었고, 이는 인간이 부여한 질서가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러한 좌절은 과학의 한계를 넘어, 삶의 불확실성에 직면했을 때 인간이 겪는 존재론적 불안감을 드러낸다. 우리는 예측하고 통제하려 하지만, 세상은 늘 우리의 기대를 배반하며 새로운 혼돈을 던져준다. 조던의 이러한 고통은 혼돈 앞에서 질서를 맹렬히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이 얼마나 비극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완벽한 통제를 추구하는 것은 결국 또 다른 형태의 좌절을 낳을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우생학이라는 어두운 그림자]
책은 조던의 삶에서 우생학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조명하며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조던은 말년에 우생학이라는 비과학적인 사상에 심취하여, 인류를 '우월한' 존재와 '열등한' 존재로 분류하고 '열등한' 존재를 제거해야 한다는 끔찍한 주장을 펼친다. 이는 물고기 분류라는 순수한 과학적 행위에서 출발했던 그의 질서 추구가 얼마나 쉽게 편견과 차별의 도구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례이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조던의 삶을 통해 인간의 본성이 가진 양면성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질서를 추구하는 본능이 때로는 폭력과 억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이다. 아름다운 분류 체계가 특정 집단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우리가 어떤 사상이나 이념을 맹목적으로 추종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비극적인 결과를 암시한다. 조던의 우생학 신봉은 단순한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당시 사회에 만연했던 계몽주의적 우월주의와 과학만능주의가 빚어낸 비극의 단면을 보여준다. 과학이 진리를 추구하는 고귀한 행위일지라도, 그 지식이 인간의 윤리적 판단 없이 오용될 때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저자는 조던의 이러한 어두운 면모를 미화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제시하며, 독자들로 하여금 과학적 지식과 윤리적 책임의 관계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만든다. 조던은 물고기를 분류하며 질서를 부여하는 데는 뛰어났지만, 인간 사회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이해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는 자신이 세운 '우월한' 분류 기준에 따라 인간을 재단하려 했고, 이는 결국 수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는 지식이 단순히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목적을 위해 사용되고 어떻게 해석되는지에 따라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음을 강력히 경고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책의 제목인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관통한다. 이는 생물학적 분류 체계에서 '물고기'라는 상위 분류가 진화론적 관점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과학적 사실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인간이 만든 모든 분류와 질서는 임시적이며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는 철학적 통찰을 담고 있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만든 범주들은 고정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특정한 목적과 시점에 따라 구성된 개념일 뿐이다.
조던이 평생을 바쳐 분류했던 물고기들이 결국 진화론적 관점에서 해체되듯이,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많은 개념과 믿음 또한 끊임없이 재정의되고 무너질 수 있다. 이는 절망적인 메시지가 아니다. 오히려 기존의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유연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저자는 조던의 실패와 좌절을 통해, 삶의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변화에 적응하며 새로운 의미를 찾아나가는 자세를 역설한다. 세상이 완벽하게 분류되거나 통제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지혜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는 지식의 진정성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진리'라고 믿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오류로 밝혀지거나, 새로운 지식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는 사실은 겸손함을 요구한다. 과학은 절대적인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이지만, 그 과정 자체가 끊임없는 수정과 보완을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우리가 확고하다고 믿는 지식이나 질서조차도 언제든 재검토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우리에게 삶의 다양한 측면에서 고정관념을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할 것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