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은 체력에서 나온다. 달달한 사랑이나 찐한 우정도 결국 다 건강해야만 가능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사람에겐 부모도, 부부도, 결국은 남이다. 어쩌면 그래서 혼자가 좋다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혼자만 될 수 있으면 이 모든 귀찮음과 짜증, 쓸모없는 대화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까 그러나 알다시피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혼자가 좋다는 말은 사실 '잠시 숨돌릴 시간 좀 줘'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을 뿐. 나는 영원히 혼자가 되고 싶진 않았다. 그저 내 사람들에게 보내야 할 다정함이란 의무에서 잠시 피신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운동을 하기로 했다. 다정함의 총량을 늘리기 위해 플랭크를 하고 집 앞을 뛰어다니기로 했다. 멋진 몸은 애당초 기대도 하지 않는다. 다만 조금이라도 단단해진 마음만은 원한다. 피곤에 찌든 날 집에 돌아가도 서로를 환영하고 환영받을 수 있는 당연한 수준의 다정함은 갖고 싶다. 근육의 크기만큼 다정함의 크기도 커질 것이다. 단단해진 복근과 허벅지는 말랑해진 내 마음도 다시 견고하게 고쳐놓을 것이다. 나는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 너무 걱정됐다. 내일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만을 머릿속에 꽉꽉 채웠다. 꼭 생존밖에 없는 유기견처럼 경계심이 강해 졌다.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짜릿함보다는 안도감에, 특별함 보다는 일상적임에 더 가깝다. 아무 탈 없이 일할 수 있어서, 아픈곳 없이 가족과 통화할 수 있어서, 희망은 없어도 절망도 없는 내일을 또 살아갈 수 있어서 행복할 수 있는 게 지금의 내 삶이다. 누군가는 그토록 조용한 인생에서는 행복을 발견할 수 있냐고 묻겠지만, 물론. 조용함은 웃을 일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울 일이 없는 상태니까. 기쁜 일이 없는 하루가 아니라 나쁜 일이 없는 하루니까. 아무일도 없이 지나간 이 조용한 하루들은 우리 인생의 공백이 아닌, 여백이니까. 행복이란 짜릿함만 있는것이 아니기에 편안함과 안도감. 안정감과 잔잔함. 깊은 밤 고민 없이 잠들 수 있는 감사함 또한 우리행복이라 이름 붙일 수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