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는 무슨 의미인지 짐작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책을 펼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다소 엉뚱한 제목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생물학이나 분류학을 다루는 과학 서적이라기보다는, 삶의 혼란과 질서, 그리고 인간의 신념에 대한 매우 깊은 철학적 이야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저자 룰루 밀러는 19세기의 유명한 어류 분류학자였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추적합니다. 조던은 평생 물고기를 수집하고 이름 붙이며 세상에 명확한 질서를 부여하고자 애쓴 사람입니다. 그는 대지진으로 모든 연구가 무너졌을 때조차 포기하지 않고, 물고기 표본에 일일이 이름표를 다시 붙이며 자신의 신념을 고수했습니다. 이런 그의 열정은 처음에는 존경스러웠으나, 점점 책을 읽으며 조던이 지녔던 확고한 믿음이 실제로는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조던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우생학에 빠져들어 편협한 사고로 나아가는 과정은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저자는 조던의 이야기에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삶의 혼란을 교차시키며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처음에는 서로 상관없어 보였던 두 이야기가 하나로 엮이며, 독자인 저에게도 많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사십대 초반이라는 지금 나이에 이 책을 읽으면서, 저 역시 삶에서 무너지는 질서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질서를 세우고 통제하는 것이 현명한 삶의 방식이라고 믿어왔지만, 어쩌면 그런 확신조차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이 책의 제목인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국 우리가 당연히 믿고 있던 질서와 분류, 구분 짓기가 얼마나 인위적이고 허약한 토대 위에 서 있는지 지적하는 문장이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혼란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때로는 인생에서 더욱 소중하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질서가 무너졌을 때 억지로 다시 세우려는 것보다, 그 혼란 속에서 오히려 삶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긴 여운이 남았습니다. 누구나 삶의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혼란과 마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순간 무작정 질서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혼란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더 유연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이 책은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던지는 인문학적인 서적에 가까웠습니다. 앞으로 삶의 방향에 혼란이 느껴질 때마다 다시 펼쳐보고 싶어지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