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의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는,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야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소설이었다. 처음엔 전형적인 미스터리로 보였다. 기억을 잃은 피해자, 세 명의 용의자, 그리고 각각의 시선으로 서술되는 구조. 그런데 끝까지 읽고 나면, 전혀 다른 인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렇다. 화자 자신이 범인이었다. 그 사실은 단순한 반전 이상의 무게를 지닌다. 독자는 이미 그의 시선을 따라가며 ‘누가 범인인가’를 추리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 ‘나’가 범인일 가능성은 의심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정유정의 『종의 기원』이 떠올랐다. 『종의 기원』에서도 화자가 서서히 자신의 본성을 자각해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 내면의 잔혹함이 드러난다. 하지만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는 끝까지 자각하지 않거나, 자각했음에도 독자에게 숨긴 채 서술을 이어간다. 이 차이는 엄청나다. 『종의 기원』이 ‘자기 고백’의 형태라면, 히가시노의 이 작품은 ‘조용한 위장’이다. 그 침묵은 책을 다 읽고 나서야 파열음을 낸다.
다 읽고 나니, 내내 공정하고 이성적으로 보이던 화자의 문장들이 전부 ‘자기 합리화’였다는 점이 섬뜩하게 다가왔다. 이 소설은 단순히 “범인을 찾는” 이야기가 아니라, **“범인의 시선으로 진실을 은폐하는 서사”**다. 히가시노는 그 사실을 아무 말 없이 숨겨둔 채, 독자 스스로가 마지막 문장에서 뒤통수를 맞게 만든다. 그 구조 자체가 탁월하다.
읽는 동안 나는 화자를 믿었고, 공감하기까지 했다. 그가 피해자에게 느끼는 죄책, 용의자들을 대하는 시선, 심지어 기억의 조각을 맞추려는 노력까지. 하지만 결국 모든 퍼즐이 맞춰졌을 때 느낀 건, 배신감과 함께 ‘인간은 얼마나 스스로에게 관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가 ‘기억’을 무기로 삼아 자신을 면죄하는 방식은 너무도 현실적이었다.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는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의 기대를 완전히 비껴간다. 오히려 그 기대를 이용해, 독자가 스스로 범인을 외면하게 만든다. 마지막 한 줄에서 느낀 충격은 단순한 반전이 아니라, 인간의 자기기만을 들이대는 차가운 거울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다시 처음부터 되짚어 읽고 싶은 강박이 생긴다. 진짜 무서운 건 기억이 아니라, 기억을 가장한 침묵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