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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5.0
  • 조회 229
  • 작성일 2025-06-19
  • 작성자 유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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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흰』은 삶과 죽음, 존재와 부재를 흰색이라는 하나의 상징에 압축해 사유한 작품이다. 이전작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에서 작가는 고통, 폭력, 소외된 존재에 대한 서사를 통해 인간의 한계와 존엄을 직시해 왔다. 그러나 『흰』은 서사의 외연을 걷어내고, 가장 미세한 언어와 이미지로 존재의 본질을 응시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준다.

『소년이 온다』는 집단적 폭력과 죽음을 통해 역사적 상처를 다룬다. 광주라는 구체적 배경, 죽은 소년의 시점, 목격자들의 기억은 고통을 뚜렷하게 재현한다. 반면 『흰』은 지극히 개인적인 상실—태어나자마자 죽은 언니—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상실은 특정 인물의 고통을 넘어서 ‘태어나지 못한 존재’, ‘말해지지 않은 생’이라는 보편적 결핍으로 확장된다. 『소년이 온다』가 역사의 목소리를 되찾으려는 윤리적 작업이었다면, 『흰』은 부재 자체를 기억하고 떠올리는 감각적이자 철학적인 시도로 느껴졋다.
『채식주의자』는 육체의 해체와 침묵의 저항을 통해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욕망과 억압을 다룬다. 영혜는 사회로부터 벗어나는 방식으로 자기를 소거한다. 그러나 『흰』의 주체는 소거되기 이전의 존재다. 존재를 온전히 갖지 못한 상태, 말하자면 '무無'에 가까운 지점에서 시작된다. 그렇기에 『채식주의자』가 육체를 통해 존재를 파괴했다면, 『흰』은 육체가 없기에 더욱 간절하게 존재를 꿈꾸는 서사다.

형식 면에서도 『흰』은 이질적이다. 전통적 소설 구조를 거부하고, 짧은 단상과 흰색 사물들의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 ‘달빛’, ‘소금’, ‘눈’과 같은 요소들은 감각적이면서도 정서적 공명을 일으킨다. 이 이미지들은 언니의 흔적을 대체하면서, 결여된 것을 언어로 메우려는 시도이자 실패의 반복이기도 하다. 독자는 이야기의 논리를 따라가기보다, 감정의 파편을 따라 가게되었다.

이 세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한강의 집요한 질문은 “존재란 무엇인가”, “기억은 어떻게 남는가”다. 『소년이 온다』는 역사의 기록되지 않은 진실을 복원하고자 했고, 『채식주의자』는 언어로 말해지지 않는 고통을 육체로 표현했다. 『흰』은 그 어느 쪽에도 머무르지 않으며, 말하지 않음으로써 전달하는 부분을 느꼇다.

결국 『흰』은 죽음 이후 남은 자의 언어이고, 한강의 문학이 외침에서 침묵으로, 고발에서 명상으로 이동해 온 과정을 집약한 작품이다. 『소년이 온다』가 외면의 고통을, 『채식주의자』가 내면의 균열을 말한다면, 『흰』은 존재와 부재 그 경계에서 언어조차 부유하는 감각을 느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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