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같은 작가의 작품 "용의자 X의 헌신"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 해당 작품을 선택했다. 전자는 그의 초기 대표작으로서 치밀한 플롯과 논리적 정합성에 기반한 추리소설의 정수를 느낄 수 있었으며, 후자는 보다 복합적인 윤리적 질문과 정서적 여운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라고 느껴졌다.
"용의자 X의 헌신"은 극도로 절제된 감정 묘사와 수학적 논리 전개가 인상적이었다. 특히 이시가미라는 인물은 철저하게 계산된 선택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때문에 독자는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고독, 헌신, 그리고 비합리적인 사랑의 파괴력을 더 느낄수 있었다. 반면에 이번에 읽은 "침묵의 퍼레이드"는 동일한 추리 소설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정서적 밀도가 크게 증가한 작품으로 느껴졌다.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는 가해자, 그리고 그를 둘러싼 공동체의 침묵은 독자에게 단순한 수사적 긴장감이 아닌 윤리적 판단을 요구해 왔다. 가가 형사는 이번 작품에서 이전보다 훨씬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났으며, 과거와 달리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 역시 논리적 결론이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와 정서적 판단에 기반해 전개된다.
두 작품 모두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만, 이를 다루는 방식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용의자 X"가 개인의 논리를 통해 정의를 탐색했다면, "침묵의 퍼레이드"의 가가 형사는 이 사건 앞에서 감정적으로 더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게 오히려 더 현실적이고,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반면 이시가미는 철저히 계산된 논리 속에서 움직이지만, 결국에는 누구보다도 감정적인 인물이었고. 그 두 사람이 대조적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또한, "침묵의 퍼레이드"는 히가시노 특유의 치밀한 구성과 절제된 문장 덕분에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단순히 ‘누가 범인인가’를 밝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물 각각의 사연과 감정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스스로 곱씹게 된다.
"침묵의 퍼레이드"는 제목처럼 조용하지만 강한 울림을 남겨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