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소설 형제가 출간됐을 때, 위화가 허삼관에 이어 이광두라는 희대의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찬사와 함께, 작위적 스토리 전개에 대한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우리나라를 비교해 볼때, 어색한 스토리 전개가 거북할 수 있지만, 그건 아마도 우리 사회가 중국보다는 투명하다는 월감이나, 거대한 중국의 단면만 접했을 뿐 실제 중국에 대해서는 무지한 채로 갖게 된 자신감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 후로 10년이 지났고, 중국과 우리나라는 경제 등 모든 것이 역전되었다. 심지어 미세먼지 조차 중국보다 좋지 않은 상태에 있다. 한강의 기적보다 훨씬 압축적인 자본주의화의 길을 걸은 중국의 속살을 이 작품을 통해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소설 형제는 두 시대가 만난 이야기이다. 앞 부분은 유럽으로 치자면 중세에 해당하는 문화대혁명 시기의 이야기이고, 정신의 광기, 본능을 억압하고 처참한 운명의 시대에 관한 이야기이다. 뒷 부분은 현재에 관한 이야기이다. 오늘날의 유럽보다도 더 한, 윤리가 전복되고 경박한 욕정을 추구하는 만물군상의 시대이다. 한 서양인이 4백년을 살아야 경험할 수 있는 양극단의 시대를 한 중국인이 겪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40년이었다. 4백 년 간의 온갖 풍파와 천변만화가 이 40년에 농축되어 있다. 이것은 너무나도 진귀한 경험이다. 그리고 이 두시대를 연결하는 것이 바로 형제 두 사람이다. 그들의 생활은 핵분열 중에 핵분열되고, 그들의 슬픔과 기쁨은 폭발 중에 폭발한다. 그들의 운명은 이 두 시대와 마찬가지로 천지가 뒤집어지고, 결국에는 은혜와 원한이 교차하는 가운데 그 결과를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송강과 이광두는 극단의 경제 환경에서 시대를 살아간다. 한 지역의 GDP를 책임지는 부자와 가장 가난한 자, 하지만 그들은 정신상태의 혼란을 공통적으로 경험한다. 송강은 자살로 삶을 마감하고, 이광두는 인간성 말살의 시대에서 꾸역꾸역 삶을 지속한다. 인간성 회복의 길을 찾지만, 주위 환경은 그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이광두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보았다. 거울 속에는 똥을 싸고 오줌을 누는 자신의 표정이 보였고, 그 느낌이 마치 아름다운 꽃을 보다가 소똥을 보는 듯했다. "삶과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아도 우리는 여전히 형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