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은 배워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본능에 가까운 감각일까. 이 오래된 물음을 폴 블룸은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낸다. 『선악의 기원』은 생후 몇 개월밖에 안 된 아기들을 통해 인간 도덕성의 뿌리를 들여다보는 책이다. 도덕이 오롯이 사회적 학습의 산물이라는 가설에 도전하면서도, 그는 단순한 생물학적 결정론에는 머물지 않는다.
책 초반부에 소개되는 인형 실험은 가장 인상 깊었다. 언덕을 오르려는 인형을 도와주는 존재와 방해하는 존재를 보여준 뒤, 아기들에게 어느 쪽을 선호하는지를 물었다. 결과는 명확했다. 아기들은 도와주는 인형을 일관되게 선택했다. 그들은 타인의 의도를 구분하고, 선한 행동에 더 끌린다. 이는 인간이 최소한의 도덕 틀을 갖추고 태어난다는 강력한 증거다. 이런 실험을 접하며, 처음 본 사람의 따뜻한 말투나 작은 배려에 끌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유를 설명하긴 어려웠지만, 그런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인식했던 경험은 꽤 자연스러웠다.
반면, 도덕 감각이 언제나 보편적이고 이타적인 것은 아니다. 책은 아기들이 같은 언어를 쓰는 인형을 더 신뢰하고,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인형이 괴롭힘을 당할 때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는 실험 결과를 제시한다. 낯선 것에 대한 경계심, 나와 닮은 존재에 대한 호감을 우리는 매우 이른 시기부터 드러낸다. 예컨대, 친한 친구의 실수에는 관대하지만 모르는 사람의 같은 행동엔 불쾌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도덕이 감정과 연결되어 작동한다는 사실을 이보다 더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드물 것이다.
벌과 복수에 대한 인간의 감정 역시 흥미로운 분석 대상이었다. 유아들은 규칙을 어긴 존재가 처벌받는 장면을 본 뒤 만족스러워하는 반응을 보였다. 정의가 실현되었다는 기쁨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타인을 통제하고 싶은 욕구일 수도 있다. 가령, 누군가 나를 부당하게 대했다고 느꼈을 때 그가 다른 사람에게 비난받는 걸 보며 묘한 위안을 느끼는 감정이 떠오른다. 도덕은 정의를 바탕으로 하지만, 그 과정에 깃든 감정은 때로 어둡고 복잡하다.
블룸은 도덕을 감정만으로 설명하는 시각에 비판적이다. 그는 공감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때때로 도덕적 판단을 왜곡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 아이에게 연민을 느끼며 돕지만, 수천 명의 고통엔 무감각해진다”는 구절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감정은 특정한 얼굴, 구체적인 이야기에 반응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성은 더 넓은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친구가 겪는 고통에 즉각 반응하면서도, 뉴스 속 타인의 비극에는 무뎌지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감정은 행동을 유도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공정하거나 일관된 판단을 담보할 수 없다.
마지막 장에서 블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선을 알 수 있도록 태어났지만, 선하게 살기 위해선 배워야 한다.” 이 문장은 책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인간은 도덕의 기본 요소를 지닌 채 세상에 나오지만, 그것이 성숙한 윤리로 발전하려면 학습과 반성이 필요하다. 친절, 공감, 정의감은 자라면서 방향을 잃기도 하고, 필요할 때 발현되지 않기도 한다.
『선악의 기원』은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강화하면서도, 그 믿음이 무조건적이지 않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도덕성은 타고난 감각과 스스로 다듬은 선택 사이에서 매일 새롭게 형성된다. 그것이야말로 인간답다는 것의 의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