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채식주의자>는 하루아침에 채식주의자가 된 영혜를 바라보는 남편의 시각, 형부의 시각, 언니의 시각을 각각 서술한 이야기이다. 영혜는 채식주의자를 넘어 나무 그 자체가 되고 싶어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에서 나무로 정체성이 바뀌게 되는 영혜의 모습은 가족을 비롯한 일반인의 시각에서는 정신병으로 보인다.
애초에 아내 영혜와 결혼했던 이유가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수준에 맞는 여자(자신을 거절하지 않을 것 같은 여자)이기 때문이었던 남편은 정신병에 걸린 아내에게 혐오감을 느끼고, 결국 아내를 떠나게 된다.
하지만 같은 모습을 보고 형부는 처제인 영혜에게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욕정을 한다. 단지 몽고반점이 있다는 이야기 하나로 처제의 알몸을 상상하며 그림을 그리고, 인내와 선의를 배푸는 자신의 아내를 비난하며, 마지막에는 처제와 성관계까지 한다.
그래서 <채식주의자>와 <몽고반점>을 읽는 내내, 두 화자의 이기심과 무책임함에 숨이 막혀서 책을 읽는 게 쉽지 않았다. 특히 <몽고반점>은 영혜의 모습이 형부의 눈을 통해 묘사가 되기 때문에 더 끔찍했다. 하지만 사실상 이 시점부터 영혜의 정체성은 인간보다 나무에 가깝다. 더이상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광합성을 위해 햇볕 아래에 가슴을 내놓거나 사타구니를 벌린다. 물구나무를 서 손으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싶어한다. 인간인 언니의 시점에서는 동생이 정말 정신 병원에 가야할 지경이 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일반 독자와 가장 결이 비슷할 언니는 자신의 삶의 이유를 찾으려 노력하며 동생을 돌본다. 하지만 이미 동생과 대화가 잘 되지는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영혜는 나무가 되어간다.한강의 <채식주의자>가 갖고 있는 메시지는 결국 그것이 옳고 그름을 넘어서서, 한 여성이 기존의 관습을 버리고 새로운 선택을 하고자 할 때 과연 가족들 사이에서 존중을 받을 수 있느냐에 대한 것이다. 사람으로 사는 것보다 나무로 사는 것이 좋겠다며 나무와 가까워지는 영혜를 부모도, 남편도, 언니도 모두 결국 이해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