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형사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인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는 다섯 번째 작품인 <내가 그를 죽였다>와 마찬가지로 독자들을 고민에 빠뜨리면서도 직접 범인을 추리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매번 상상조차 못했던 소재와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번에는 독자들에게 범인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1996년 작품이 출판될 당시 범인이 누구냐는 독자들으리 문의 전화로 인해 출판사를 마비시켰던 문제작의 작품이라고 한다.
전자부품 메이커의 도쿄 지사 판매부 직원으로 근무하는 이즈미 소노코는 부모님이 죽은 뒤 남은 가족이라고는 교통 지도계 경찰인 오빠 야스마사 밖에 없었다. 도쿄로 온 뒤 좀처럼 직장 동료나 친구와 어울려 지내지 못했던 소노코는 혼자 점심을 먹으러 다녔다. 여느 때처럼 점심으로 메밀국수를 먹으러 가던 길에 회사 근처에서 그림을 그려 파는 거리의 화가를 봤다. 그가 그린 그림 가운데 고양이 그림이 마음에 들었지만 직장 상사를 만나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거리의 화가는 츠쿠다 준이치로 그녀가 자신이 그린 고양이 그림 가격을 묻자 그림을 주고는 돈을 받지 않았다. 소노코는 그림을 받은 보답으로 그에게 저녁을 대접했고, 그후로 그들은 점점 가까워져 연인 사이가 되었다. 고교 동창이자 대학교 동창인 유가 가요코는 소노코가 유일하게 마음 편히 대할 수 있는 친구로 그녀에게 준이치를 소개했다. 준이치는 가요코의 첫인상이 좋다고 말하며 가요코에게 관심을 보이게 되는데…….
# '준이치든 가요코든 둘 중 누군가─. 소노코는 불길한 상상을 했다. 둘 중 누군가 나를 죽여준다면 좋을 텐데, 라고.' / P.36
준이치가 헤어지자고 말한 원인이 가요코라는 것을 알게 된 소노코는 괴로워했다. 오빠 야스마사에게 전화를 해서 믿을 사람이 없다며 주말에 고향 집으로 내려가겠다고 했다. 야스마사는 여동생이 약속한 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자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동생이 죽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자살이 아닌 타살임을 직감한 야스마사는 증거를 은폐하고 자살로 보이도록 위장했다. 네리마 경찰서의 순사부장인 가가 교이치로는 자살처럼 보이지만 무언가 석연치 앉음을 감지하고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용의자는 둘, 헤어진 애인 츠쿠다 준이치인가? 절친한 친구 유가 가요코인가?
#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싸구려 같고 질척질척한 거야. 사람 목숨도 소설이나 텔레비전 드라마보다 더 싸구려로 취급되지. 지난번에 트럭 운전기사가 아이를 친 사고가 있었어. 아이는 즉사했고 운전기사도 차를 벽에 들이박아서 중상을 입었다. 근데 그 운전기사의 마누라가 이런 소리를 하더라고. 어차피 앞으로 일도 못할 거라면 깨끗이 죽어주는 게 더 편할 텐데, 라고 말이지." / P.244
# "그날 밤 나는……, 소노코를 죽일 마음으로 여기에 왔었으니까요." / P.276
# "그럼 물어보겠는데, 당신은 소노코 씨의 뭘 알고 있죠? 당신이 아직 모르는 게 있어요. 소노코 씨가 죽기 전날까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잖아요? 나는 중요한 카드를 갖고 있어요. 제발 이 문을 열어요." / P.294
전체적인 이야기를 보면 아주 평범하면서도 오히려 뻔하다고 볼 수 있는 내용이다. 이게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인가? 의심스러울만큼 사건의 배경은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범인을 알려주지 않고 독자들이 밝힐 수 있도록 문제를 던져주면서 추리소설로서의 작품성은 높아졌다. 이 책에서는 마지막까지 일부러 범인이 누구라고 명시하지 않는다. 결정적인 단서들을 대화 속에서 던져주고 독자들이 생각해서 직접 추리하도록 만든다. 그런 점에서 기존 작품들과 비교해도 독특함은 물론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도전해보고 싶은 파격적인 작품이다. 용의자는 처음부터 두 사람뿐. 범인을 맞출 확률도 50%, 틀릴 확률도 50%인 셈이다. 추리하기 쉬운 작품은 아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글 속에는 이미 힌트가 모두 있기 때문에 결코 어렵지도 그렇다고 너무 쉽지도 않은 적당히 머리를 쓰게 만드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