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지크문트 프로이트
일반적으로 '히스테리 증상'이라고 하는 것은 의학적인 검사를 했을 때 신체적으로는 이상이 드러나지 않지만 심리적, 정신적 스트레스, 갈등 등이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미국 정신과학회가 제정한 정신장애의 기준에서 히스테리는 신체화 장애라는 명칭으로 통용된다. 신체화 장애는 통증, 소화기 계통 증상, 성적 증상 그리고 신경과 증상과 비슷한 증상들이 합쳐진 복합 증세가 30세 이전에 시작되는 것이다. 진단 기준으로는 몸이나 기능의 네 군데 이상에서 통증이 따라야 한다.
19세기 의학계는 해부학과 생리학을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우울 등의 모든 심리적 증상은 '뇌 조직이 병든 탓'이라고 여겼으며 히스테리가 성적인 것에서 비롯될 가능성을 부정하며 뇌의 조직 장애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샤르코는 심리적인 접근법을 써서 히스테리를 치료했고, 관념이 히스테리 현상을 야기한다고 했다. 그러나 유전적인 영향도 강조했다. 브로이어는 환자들이 히스테리의 병인이 되는 외상적인 사건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면'을 이용했다. 그의 카타르시스 요법에는 우선 환자를 최면 상태로 이끈 뒤 증상의 원인이라고 여겨지는 잊힌 외상적 기억들을 불러일으키고 그에 얽힌 감정을 발산시킴으로써 그 증상을 완화시킨다. 이 책 <히스테리 연구>에 나오는 사례를 보면 프로이트는 치료수단으로서의 최면을 버릴 생각을 하게 된다. 히스테리의 원인이 복합적인 경우 일회적인 카타르시스 요법은 부적합해 보였다. 그러던 중 '저항'이라는 현상을 발견하고 그 개념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최면술과 암시 요법이 환자의 저항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고 그 현상을 연구하고 활용할 기회를 박탈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환자(엘리자베스)를 치료하면서 각성상태에서 환자의 이마를 손으로 압박시켜 외상적인 기억을 불러일으키도록 종용하는 방법을 사용해 보기도 하면서 프로이트는 점차 '자유연상'을 발전시켜갔다.
프로이트는 여러 사례에 대한 자세한 기록과 관찰한 현상이 개념을 형성하기까지의 연구과정과 다양한 자료를 남겼다. 사례를 통한 초기 치료기록에서 보면 현대 심리 치료자의 눈으로 볼 때 다소 부적절한 치료 개입이 드러나는 부분도 있으나 프로이트가 '심리 치료' 발달의 초기에 활동했으며, 치료 과정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있는 결과라 할 수 있다.
정신분석은 당시 유행하던 히스테리의 원인을 규명하고 치료하려는 노력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히스테리 연구>가 완성된 다음 해인 1896년이 바로 정신분석이 시작된 해이다. <히스테리 연구> 본문에는 저항, 전이, 무의식 등 정신분석의 중요한 사례들에 나오는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싹트기 시작한 개념들도 있다. 히스테리가 정신 병리의 근대 이론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처럼 <히스테리 연구>는 정신분석 발달에 중요한 초석을 놓았다고 볼 수 있다. 프로이트의 업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마음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도구를 고안했다는 사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