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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개정판)
5.0
  • 조회 230
  • 작성일 2025-06-23
  • 작성자 윤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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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작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단지 식습관의 변화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소설은 개인의 내면, 사회적 억압, 육체성과 폭력,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표면적으로는 여주인공 영혜가 어느 날 갑자기 고기를 거부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무의식적 폭력과, 거기에 저항하거나 탈출하려는 존재의 고통이 섬세하고도 잔혹하게 담겨 있다.

소설은 총 3부로 나뉘어 있으며, 각각 다른 시점의 화자를 통해 영혜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1부는 남편, 2부는 형부, 3부는 언니의 시선으로 구성되며, 독자는 영혜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이 점에서 소설은 매우 독특한 구조를 띤다. 영혜는 작품 내내 거의 말을 하지 않으며, 그녀의 변화는 오로지 주변 인물들의 불안, 분노, 혐오, 집착을 통해 드러난다. 바로 이 ‘부재하는 주체’로서의 영혜는, 역설적으로 독자에게 가장 강한 존재감을 남긴다.

영혜가 채식을 시작한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꿈을 꾸었어요”라는 말과 함께 그녀는 더 이상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이 단순한 결정은 가족과 사회 질서에 균열을 일으키고, 결국 그녀를 정신병원으로 몰고 간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그녀가 고기를 거부한 것이 단순한 식습관의 변화가 아니라, 인간이 가진 폭력성에 대한 근본적인 거부임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몸속에 고기, 즉 죽음을 먹고 자란 피와 살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고, 결국엔 ‘식물’이 되고자 한다. 이는 신체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 존재 방식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이며, 동시에 비인간화된 세계에 대한 가장 극단적이고 순수한 저항이다.

이 작품이 충격적인 이유는, 이러한 영혜의 고통을 주변 인물들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녀를 끊임없이 통제하고 소유하려 한다는 점이다. 남편은 자신의 ‘평범하고 무난한’ 삶을 깨뜨렸다는 이유로 그녀를 혐오하고, 형부는 그녀의 육체에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집착하며, 언니는 끝내 영혜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특히 2부에서 형부가 영혜의 몸에 꽃을 그려 넣고 성적으로 욕망하는 장면은, 여성의 신체가 사회와 남성에 의해 어떻게 대상화되고 폭력적으로 사용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영혜의 몸은 그녀 자신의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과 욕망 속에서 조각난다.

한강의 문장은 차갑고 절제되어 있으며,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독자의 가슴을 서서히 죄어온다. 그녀는 과장 없이, 그러나 잔혹할 만큼 사실적인 언어로 인간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를 비춘다. 특히 정신병원 장면에서는 ‘정상’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폭력이 자행되는지를 고발하며, 우리가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가치 기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가? 영혜는 진정 미친 것인가, 아니면 세상이 미친 것인가?

채식주의자를 읽고 나면 쉽게 잊히지 않는 책이다. 그 불편함과 침묵, 서늘한 아름다움은 오랫동안 독자의 마음속에 남아 질문을 던진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난 뒤, 한 개인의 선택이 얼마나 쉽게 폭력으로 억압될 수 있는지, 그리고 사회가 만들어낸 ‘정상성’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고통이 감춰져 있는 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영혜가 식물이 되기를 원했던 이유는, 아마도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세상이 너무 아팠고,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채식주의자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폭력과 억압, 그리고 침묵을 날카롭게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채식이라는 단순한 설정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고통으로 뻗어나갈 줄은 예상치 못했다. 한강은 이 작품을 통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방법을 택했고, 그 결과 이 책은 문학의 힘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놀라운 예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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