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발저의 산문 중에서 열 한편을 발췌하여 엮은 책이다. 그는 이 짧은 산문들에서 20세기 초 산업사회의 광기와 그림자를 보여준다. 비인간적인 대도시의 분위기, 인간들의 소외와 고독을 주제화한다
바로 앞에 풍요로운 대지가 펼쳐져 있었지만 나는 가장 작고 가장 허름한 것만을 주시했다. 지극한 사랑의 몸짓으로 하늘이 위로 솟아올랐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나는 하나의 내면이 되었으며, 그렇게 내면을 산책했다. 모든 외부는 꿈이 되었고 지금까지 내가 이해했던 것들은 모두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바뀌었다. 나는 표면에서 떨어져 나와 지금 이 순간 내가 선함으로 인식하는 환상의 심연으로 추락했다. 우리가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우리를 이해하고 사랑한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니라 어떤 다른 존재였으며, 또한 바로 그렇기 때문에 비로소 진정으로 나 자신이었다. _<산책> 중에서
가난한 탓에 학업을 미처 마치지 못하고 이리저리 글을 쓰며 생을 연명했던 발저는 가난한 경험을 했던 자만이 타인의 가난을 이해한다고 했다. 가난은 그의 숙명이였고 그렇게 때문에 산책에 천착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산책은 비단 어떤 길을 걷는 것 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내면을 걷는 것, 그래서 내면을 탐색 하는 것도 산책이다. 스스로의 내면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는 결국 타인에 대한 이해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눈 속을 산책하다 생을 마감했다는 그의 인생 만큼이나 아름다운 글과 사상으로 엮여있는 책이 아닐 수 없다
자기 부정으로 점철된 비극적인 여행을 연상시키는 삶의 분위기가 녹아있고. 짐짓 과장된 어조로 자신의 무력함과 초라함, 그리고 그것을 업신여기는 세상을 자조하는 식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남들은 결코 알 수 없을, 군중 속을 홀로 거닐며 작은 것들을 관찰하는 자신만의 세계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도 알알이 박혀있다.
“삶이 내 어깨를 붙잡았고, 비범한 시선으로 내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빌케 부인>)거나, “내가 본 것은 작고 빈약했으나 동시에 위대하고 의미 깊었으며, 소박하지만 매혹적이었고, 가까이 있으면서 훌륭했고, 따스하면서도 사랑스러웠다”(<산책>) 같은 문장들이그의 내면을 엿보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