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도는 한 장짜리이지만, 지도가 만들어지는 데는 최소 4가지 지도가 활용되었습니다. 원나라 이택민의 성교광피도(聲敎廣被圖), 명나라 청준의 혼일강리도(混一疆理圖), 조선 지도, 일본 지도가 그것입니다. 우선 성교광피도에서는 전체 윤곽과 당시 지명과 외역 지방을 참조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대명혼일도(1391년)가 이와 유사합니다. 혼일강리도에서는 한반도와 일본 지역의 역대 제왕 국도와 주군 연혁을 참조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선 지도는 이회(李薈)가 그렸다고 알려진 ‘팔도지도(八道地圖)’를 사용했으리라고 추정합니다. 그 이유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제작의 실무를 이회가 담당했다고 권근이 쓴 발문에 나타나 있기 때문이에요. 다만 이회의 지도는 실물이 현존하지 않아 정확한 형태를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일본 지도는 당시 조선이 가지고 있었던 다소 간략한 지도로 추정됩니다.
달의 산에서 나온 나일강과 알렉산드리아 등대의 존재가 중세 이슬람 지도와의 관련성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학자들은 이 부분에 대해 원나라 시기에 들어온 중동, 유럽, 아프리카 지역의 지리 정보가 담긴 이슬람 지도가 원나라의 성교광피도 등에 반영되었고, 이것이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까지 이어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바빌로니아의 세계지도부터 콜레라 지도까지
동아시아에서는 서구의 지도 제작법이 유입되기 전부터 기하학을 이용한 독자적인 방식으로 지도를 제작하고 활용했다. 지도 제작의 여섯 가지 원리를 확립한 배수의 제도육체를 기본으로 방격법, 평환법, 백리척 등의 제작법이 발전하였고, 이는 조선의 지도 제작술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조선에서 만든 동아시아 최초의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동서양을 통틀어 당대의 가장 뛰어난 지도로 인정받는데, 이는 원나라, 명나라, 일본 등지의 지리 정보가 통합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유럽 사회에 조선을 널리 알린 김대건 신부의 조선전도는 한글 발음 방식으로 조선의 지명을 적었을 뿐 아니라 ‘서울’과 ‘독도’가 표기되어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한편 서양에서는 150여 년에 걸쳐 제작된 카시니의 프랑스 지도가 근대 국가 형성에 실제적으로 활용되었으며 지도 제작의 기준을 세우고 지도학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영국 런던의 마취과 의사 존 스노는 콜레라 지도를 제작함으로써 당대의 끔찍한 전염병 콜레라의 원인을 밝혀내 역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지리학 박사
김종근이 알려주는 고지도 읽는 법
저자 김종근은 역사지리학 및 지도학사를 연구하는 지리학자다. 정확하고 깊이 있는 학술 정보를 기본으로, 지구평면론자들의 이야기부터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독자들이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예시와 설명을 통해 고지도를 친절하고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인류 기술의 집약체인 고지도를 제대로 읽으려면 지도에 기재된 내용을 파악함과 동시에 지도제작자, 제작의 목적, 지도 제작 기술, 지도가 제작된 시기의 역사적 상황 그리고 지도에 담긴 세계관 등을 함께 알아야 한다. 이 책은 세계 지도사에서 중요하게 평가받는 10장의 고지도를 통해 고지도 읽는 법을 자연스럽게 알려준다. 《지도 위의 세계사》를 통해 고지도는 단순히 오래된 지도 한 장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의 역사를 나타내고, 인류가 오랜 세월 축적해온 기술의 집약체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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