칵러좀
:: 전체적으로 음습하고 어두운 느낌, 인간이 항상 외면하는 밑바닥의 감정만을 정제하여 뽑아올린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내면의 적나라한 욕망과 직접 마주봄으로써 나의 경우는 어떠한지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또한 단편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책의 휴대성이 좋아 읽기 수월했고, 각 단편의 등장인물 감정 묘사가 섬세하였으며 몰입도가 좋아 순식간에 읽을 수 있었다.
-초대 : 초대는 목에 박힌 '가시'로 부터 시작하는 이야기이다. 그 가시가 내 목구멍에도 콱 박혀있는것만 같았다. 어릴 때 부터 듣고 자라왔지만 내 머릿속에 콱 박혀 나가지 않던 이야기들. 그 모든 것들이 내 목구멍에도 가시처럼 박혀있다. 특히 해당 작품에서 묘사된 가시는 2015년 즈음부터 페미니즘이 본격적으로 대두되며 등장한 용어인 '코르셋'인데, 주인공이 남자친구를 만나고 겪는 은근한 외모 압박, 본인 스스로 느끼는 괴리감 등 이 모든것이 가시를 넘어 코르셋으로 작용한 것 같다. 사실 이 가시는 어릴적부터 가깝게는 부모로부터, 멀리서는 또래문화 등으로부터 우리 목에 박혀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남자친구를 '처단'함으로써 없애버린 가시는 영원히 목구멍에 그 흔적을 남길 것이다. 그 자리를 어떻게 채워나갈지는 개인의 몫이다. 아직 나에게도 가시를 뺀 흔적이 남아있는 것 같다. 그 자리를 어떻게 채울지 깊이 고민해보아야겠다. 또한 남자친구를 처단할 수 있도록 돕고 그런 마음을 먹게 한 조력자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나는 그 조력자가 깊은 내면의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스스로에게 그런 조력자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습지의 사랑 : 습지의 사랑에서 묘사된 것은 물귀신과 숲귀신의 사랑이다. 어떤 '한 발짝'을 남겨두고 만남을 이어오던 두 사람은 어느날 물의 범람으로 인하여 그 한계를 넘게 되고, 종래에는 산사태로 인하여 하나가 된다. 재미있는 것은 그 산사태를 만든 것이 숲과 습지를 개발하려는 인간의 욕심이라는 것이다. 이 소설은 물귀신의 입장에서 서술되어 무분별한 개발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게 만든다. 덤덤하게 서술되어있지만 그 묘사는 잔인하고 섬세하다.
-칵테일, 러브, 좀비 : 세 번째 단편이기도한 '칵테일, 러브, 좀비'는 제약회사 직원들이 뱀술을 먹었다가 좀비가 되어 벌어지는 일이다. 이 단편을 읽으면서 많은 감상이 스쳐지나갔는데, 몇가지를 소개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담금주에 담긴 동물의 원한은 술에 오랜시간을 묵어 더욱 깊다. 그러니 살아있는 동물로 술을 담그는 등의 동물학대를 지양하고, 인허가받지 않은 곳에서 보편적인 방식으로 만들지 않은 음식물은 섭취하지 말자. 둘째, 좀비가 된 아빠를 대하는 엄마와 딸의 태도가 인상깊었다. 처음에는 아빠를 측은하게 여기던 엄마와 처음부터 아빠를 드라이하게 바라보았던 딸. 그리고 정부차원이 아니라 개인 차원에서의 직접 사살과 장례라는 결정을 내린 것, 종래에 망설이던 딸을 대신하여 직접 아빠를 사살한 엄마의 심경과 태도 등이 가족애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만들었다. 셋째, 마지막으로 2차감염을 막는것은 뇌에 기생하는 숙주(아기뱀)의 제사를 지내주어 천도시키는 것이 너무나도 K-샤머니즘 그자체다. 그렇게라도 명복을 빌어주어 해결하겠다는 방식이 너무나도 한국스럽다. 난 그래서 이 작품이 좋았다.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 이 소설을 알게되고, 독서비전 도서로 선택한 계기이다. KBS드라마 단편으로 드라마화 된적이 있다고 한다. 드라마 소개글이 너무나도 흥미로워 이 책을 알게되었다. 이 소설은 두 가지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그 시점이 점점 맞물리고 윤곽이 드러나는 순간이 정말 놀랍고 전율이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배드엔딩으로 약간의 잔인함까지 느껴졌는데, 이 소설을 읽을때는 사람의 감정에 대한 느낌보다는 줄거리 자체와 반전 등 문학적인 요소에 더 집중해서 읽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