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떠날 때 자신이 가진 가장 예리한 칼을 꺼내든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가까웠기에 정확히 알고 있는 상대의 가장 연한 부분을 베기 위해.
그러나 여전히 깊이 잠들지 못한다. 여전히 제대로 먹지 못한다. 여전히 숨을 짧게 쉰다. 나를 떠난 사람들이 못 견뎌했던 방식으로 살고 있다. 아직도.
압도적인 성량으로 끊임없이 세계가 말을 걸어오는 것 같던 여름이 갔다. 더 이상 매 순간 땀을 흘리지 않아도 된다. 열사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수없이 찬물 샤워를 하지 않아도 된다.
세계와 나 사이에 소슬한 경계가 생긴다. 긴소매 셔츠에 청바지를 꺼내 입고, 증기 같은 열풍이 더이상 불어오지 않는 도로변을 걸어 나는 식당에 간다. 여전히 요리를 할 수 없다. 한끼 이상의 식사를 할 수도 없다.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함께 먹었던 기억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규칙들이 돌아온다. 여전히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전화를 받지 않지만, 다시 정기적으로 이메일을 체크하고 문자메시지를 확인한다. 새벽마다 책상 앞에 앉아 쓴다. 모두에게 보내는 작별 편지를.
바다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절벽처럼 일어선 파도가 해안을 덮치는 대신 힘차게 뒤로 밀려 나갔다. 수평선을 향해 현무암 사막이 펼쳐졌다. 거대한 무덤 같은 바닷속 오름들이 검게 젖어 번쩍였다. 함께 쓸려가지 못한 수만 마리 물고기들이 비늘을 빛내며 뒤척였다. 상어나 고래이 것으로 보이는 뼈들, 부서진 배들, 번들거리는 철근들, 너덜너덜한 돛에 감긴 널빤지들이 검은 암반 위로 흩어져 있었다.
더 이상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 이제 섬이 아니구나. 검은 사막의 지평선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어둠에 잠긴 유리창을 올려다 보며 나는 생각한다. 물 속의 적막 같다. 창을 열면 검은 물살이 쏟아져 덮칠 것 같다.
무인 잠수정에 설치된 카메라가 심해로 낙하하며 촬영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수면에서 굴절돼 들어오던 암녹색 빛이 엷어지다 이내 캄캄해졌다. 화면의 암흑 위로 유령 같은 빛점들이 주기적으로 어른거리다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