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는 표현 내용에 따라 68편으로 나눈 322구의 문장이 실렸있다. 논어, 맹자, 사기, 통감절요 같은 중국의 한문고전과 삼국유사, 난중일기, 열하일기 처럼 우리 고전에서 뽑아낸 문장들이다. 과거에는 비주류로 여겨졌지만 현대에 들어 가치가 높아진 노자, 장자, 관자, 순자, 묵자, 한비자 같은 문헌에서도 발췌했다. 이 322구는 우리말과 다른 한문의 특징이 잘 녹아 있는 문장이다. 이를테면 富貴者(부귀자)에서 富貴는 ‘부귀한, 부유하고 귀한’이란 뜻이고, 富貴之(부귀지)에서 富貴는 ‘부귀하게 하다. 부유하고 귀하게 하다’란 뜻을 나타낸다. 이처럼 형태가 바뀌지 않고 뜻이나 기능이 달라지는 한문의 특징은 우리말에는 없는 것이다. 우리말에서 ‘부귀’는 ‘부귀의, 부귀를, 부귀하다’처럼 문장 속에서 조사나 어미의 형태를 바꿔 가며 사용한다.
이 때문에 富貴者나 富貴之 같은 한문을 우리말 언어 감각만으로 해석하면 엉뚱하게 번역하는 경우가 많다. 한문을 읽다 보면 이 같은 우리말과 한문의 차이를 수시로 맞닥뜨린다. 이 차이는 문장의 어순이나 구조, 표현방식 등에 두루 나타난다. 한문을 이해하려면 이를 인식하는게 필수이지만 의외로 그 차이를 짚어 주는 책이 드물다. 이 책은 그 차이를 세세히 풀이해 한문 독해의 가장 근본적인 어려움을 더는데 힘을 기울었다.
본문에서 다루는 문장에는 한문 특유의 압축된 메시지가 담겨 있다. 한문 독해라 하면 많은 사람이 한자부터 떠올린다. 한자를 많이 알면 한문 해석이 가능하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한문을 읽다 보면 이런 기대가 어그러질 때가 많다. 이를테면 현대 한국어에서 민주民主는 ‘백성이 주인이다’ 또는 ‘인민 주권’의 뜻을 나타낸다. 민주주의나 민주사회, 민주시민 같은 단어에서 쓰이고 사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문에서 民主는 ‘백성의 주인’ 또는 ‘백성의 군주’란 뜻으로 해석한다. 대개 봉건 시대의 제후나 제후 밑에서 집정하던 경대부 신분의 최고 실권자를 가리켰다. 조선 말기 어린 고종을 대신해 집정했던 흥선대원군이 바로 民主에 가까웠다.
한문에서 한자 뜻이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 사례는 매우 흔하다. 글이 쓰인 시대나 상황, 문장의 맥락에 따라 그때그때 한자 의미가 변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68편의 대표 문장마다 시대 배경과 상황을 빼놓지 않고 서술한 이유이다. 대표 문장이 아닌 예문에도 ‘이럴 때 이렇게’, ‘이렇게 번역한다면’ 이란 도움말을 두어 문장이 맥락 속에서 한자 뜻을 짐작하고 찾아낼 수 있도록 했다.
해석이 힘든 한문 문장을 만났을 때 모르는 것이 한자 뜻인지 문장의 의미 맥락인지 한문의 구조인지를 구분할 수 있다면 한문 독해의 반은 이루어 졌다고 볼 수 있다. 분야별 한자 사전이나 공구서의 도움을 받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실린 322구의 문장은 그 구분을 도와주는 자료이다. 암송이 가장 좋지만 외우지 못하더라도 문장 속에서 한자 의미를 자주 되새김질한다면 분명 한문이 달라 보일 것이다. 관례와 관습을 좋아하는 한문 문장 사례를 소개한다. 仰不愧 俯不怍 (앙불괴 부부작)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구부려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다.
율곡 이이가 열 살 때 지었다는 <경포대부>의 한 구절이다. 이이야 워낙 당대부터 천재로 유명했지만 경포대부에서도 그의 천재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경포대를 배경으로 삼아 ‘은거하는 삶이냐, 출세하는 삶이냐?’ 하는 문제를 열 살 같지 않은 안목으로 다루고 있다. 이 구절이 들어간 대목으로 은거와 출세를 대변하는 두 나그네의 대화 중 출세를 옹호하는 쪽 말을 소개해 보겠다.
“그러므로 마음을 비워 사물을 대하고 일에 부딪혀 합당하게 처리하면 정신이 어그러지지 않고 마음에 간직됩니다. 어찌 지향이 움직여 밖으로 내달리겠습니까? 높은 지위에 올라도 기뻐하지 않고 막다른 처지에 몰려도 슬퍼하지 않아야 출처의 도리를 온전히 할 수 있습니다.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구부려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하늘의 꾸지람을 면할 수 있지요. 제어하기 어려운 것이 감정이고 넘치기 쉬운 것이 기운이에요. 그들을 다스리는 데에서 실기한다면 반드시 제멋대로 흘러 지향한 바를 잃을 것입니다. 명예와 이익을 구하는 일은 성정에 해롭지만 산과 강을 좋아하는 일은 너그러움과 지혜를 좆게 하지요. 선비로 세상에 태어났다면 그 한 몸이 사사롭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풍운의 기회를 만난다면 당연히 나라의 신하가 되어야 합니다.” 앙불괴仰不愧의 불괴不愧는 한자만 놓고 보면 ‘부끄럽지 않다’는 뜻입니다, 무엇에 부끄럽지 않은지 드러나 있지 않다. 그렇지만 맹자의 글을 보면 그 부끄러움이 하늘을 향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맹자 글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다면 짐작하기 어렵다. 부부작俯不怍의 不怍 역시 맹자 글을 통해서만 부끄러움의 대상이 사람인 점을 알 수 있다.
한문은 19세기 말까지 문법론 없이 발전해 온 언어이다. 한문과 자주 비교되는 유럽의 라틴어가 고대부터 엄격한 문법론이 존재했다는 사실과 다른 지점이다. 그렇다고 한문에 문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문에선 논어, 시경, 맹자, 좌전, 사기 같은 고전의 문장이 마치 대법원의 판례 같은 권위를 행사한다. 고전의 형식과 문법이 후대에 재현되고 이어지면서 한문에 고유한 의미 문맥을 만들어 낸다. 이에 대한 교양이 없으면 한문 해석이 종종 길을 잃게 된다. 법에 비유하자면 한문 문법은 성문법이 아니라 불문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