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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5.0
  • 조회 211
  • 작성일 2025-07-28
  • 작성자 신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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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 가리(필명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은 결코 화려하거나 극적인 언어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는다. 그 대신, 인물들의 처절하고도 애틋한 삶을 담담히,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그려내며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이 작품은 열네 살 소년 모모와 그를 키우는 노년의 창녀 마담 로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삶과 죽음, 인간의 존엄성, 차별, 사랑, 가족의 의미를 다룬다.

모모는 아랍계 이민자의 자식으로, 부모 없이 파리의 뒷골목에서 마담 로자의 보호 아래 자라난다. 마담 로자는 나치 수용소를 경험한 유대인 여성으로, 한때 몸을 팔았고 이제는 창녀들의 아이들을 돌보며 살아간다. 그들의 삶은 사회적으로 주변화된 존재들의 이야기다. 누구도 그들을 완전한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도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 채 조용히 살아간다. 그러나 작가는 이들의 시선과 감정을 통해 오히려 우리 사회의 중심부가 놓치고 있는 진짜 인간성을 조명한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이 책의 시점이 어린 모모의 순진하면서도 어른스러운 시선으로 전개된다는 점이다. 모모는 세상의 복잡함을 다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오히려 그 순수함으로 어른들의 모순을 꿰뚫는다. 그는 때때로 거짓말을 하고, 성매매에 대해 우스갯소리를 하며, 자신이 이슬람인지도 잘 모르지만, 그 안에는 진심 어린 연민과 사랑이 깃들어 있다. 마담 로자가 점점 병들어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모모는 점점 더 진지하게 삶과 죽음을 고민하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이 책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마담 로자가 죽음을 앞두고 지하실에 눕는 장면이다. 그녀는 병원이나 보호소가 아닌, 자신이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장소에서 조용히 죽음을 맞고자 한다. 이를 알게 된 모모는 그녀의 뜻을 존중하며,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묵묵히 함께 지낸다. 아직 어린 소년이지만, 그는 그녀의 마지막을 존엄하게 지켜주기 위해 세상과 맞선다. 이 장면은 인간의 마지막 순간이 얼마나 고요하면서도 위엄 있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자기 앞의 생』은 프랑스 사회의 인종 차별, 빈곤, 윤리의 문제들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결코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다. 오히려 삶 그 자체에 집중하고, 인간 대 인간의 관계 속에서 진정한 사랑과 존엄이 어떻게 지켜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로맹 가리는 유머와 위트, 때로는 엉뚱한 말장난을 섞으며, 가슴 아픈 이야기를 결코 무겁게만 풀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끝내 눈물을 흘리게 하면서도, 어딘가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삶이란 무엇인가?”,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지게 되었다. 법적인 가족, 혈연적인 부모가 아닌, 서로를 지키고 이해해주는 존재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가족이라는 것을 모모와 마담 로자는 보여주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의 앞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와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운다.

『자기 앞의 생』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우리 모두가 언젠가 맞이할 ‘삶의 무게’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은 단지 소설이 아니라, 우리 사회와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거울 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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