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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5.0
  • 조회 214
  • 작성일 2025-07-23
  • 작성자 나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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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한강

소설의 화자인 주인공은 트라우마 같은 것을 피해 외국의 도시로 홀로 떠나왔다. 동시에 주인공은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 자신의 언니를 추모하고 있다. 결말에 주인공은 한국에 돌아온다. 이 소설에서 시간을 축으로 일어나는 사건은 이게 거의 전부다. 과거 회상 장면들이 단편적으로 등장하지만 대부분 서사에서 독립적으로 기술되고 있다. MBTI가 TJ로 끝나는 나로서는 명확한 구조가 느껴지지 않는 이 소설이 쉽지 않았다.
이 소설은 서사를 바탕으로 구성되는 대신에 짧은 장면들을 연달아 이어놓는 방식으로 구성 돼 있다. 대부분의 장면들은 마치 TV광고 처럼 이미지 중심적이며 감각적이다.
장면들의 주된 내용은 하얀색의 사물에 대한 묘사와 그를 통해 연상되는 ‘흰’이라고 하는 관념, 그리고 그것에 대한 노스탤지어다. ‘흰’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생명’, ‘순수함’, ‘때 묻지 않음’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소설을 구성하는 여러 장면 중 몇 가지 인상적인 장면을 정리함으로써 독후감을 완성해 본다.
외국의 낯선 도시에 이주한 주인공은 월세 집을 구한다. 그 집의 문은 철재인데 원래는 흰색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월이 많이 지나 색도 벗겨지고 녹도 많이 쓸었다. 그리고 문에는 호수를 나타내는 숫자가 날카로운 날붙이로 긁어낸 것처럼 새겨져 있다. 태어날 때는 원래 하얗고 순수했지만 세월이 흘러서 때가 묻고 순수함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문에 새겨진 호수는 집의 정체성을 몰개성한 일련번호로 표현한 것으로 차갑고 세속적인 무엇인가를 뜻할 것이다. 정리하면, 그 문은 날카롭고 뾰족한 현실로 인해 깊은 상처가 생긴 주인공을 뜻한다고 볼 수 있겠다. 주인공은 이사를 마치고 문에 새롭게 페인트를 칠한다. 어설픈 붓 자국도 남고 그동안의 때를 한 번에 덮을 수는 없었지만 그런 방식으로 주인공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것이다.
소설 초중반의 내용 대부분은 ‘흰’ 어떤 사물에 대해 묘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형식과 달리 실제 내용은 ‘흰’을 잃고 때 묻음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로 보인다.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떠난 언니를 비롯해 죽음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이 죽음에는 화자인 주인공도 연결된다. 언니가 무사히 태어나 건강히 자랐더라면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장면이 있다거나, 밤의 갈대숲에서 더 나아가고 싶은지, 더 살아갈 가치가 있는지 자문하는 장면도 있다.
구체적인 계기나 사건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지는 않지만 주인공은 어떠한 이유로 ‘흰’을 잃어버렸고 죽음과 아주 가까워졌던 것 같다. 주인공은 낯선 도시, 특히 죽음에 관한 역사가 남아있는 도시로 홀로 떠나왔다. 이것은 세속 또는 더러움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 한 것, 또는 스스로 가사 상태에 빠진 것이라 여겨진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책의 중후반으로 갈수록 깊어지는데, 미련 또는 결정의 유보로 삶의 경계에 머무는 것에 대한 감정적인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책의 초중반부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대학시절에 주인공의 동기 두 명이 연이어 세상을 떠나는 일이 있었다. 졸업생들은 그들을 추모하기 위해 돈을 모아 학교에 백목련 두 그루를 심었다. 주인공은 그 일을 이야기하면서 blanc과 blank, black, flame의 어원이 같다는 것을 언급한다. 흰 목련은 하얗기도 하지만 검기도 하고, 텅 비어 있기도 하고, 타오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실제, 새로 피어난 목련꽃은 처음에는 하얗다. 촛불의 불꽃처럼 꽃봉오리가 올라와 이내 나무 전체에 흰 불이 번진 듯 만발한다. 그러나 하얗던 목련꽃도 금새 어두운 색으로 변하고 시들어 버린다. 그리고 꽃이 떨어진다. 그것이 매 해 반복된다. 삶과 죽음, 그리고 반복됨이 ‘흰’ 목련 속에 있는 것이다.
이 내용에서 조금 더 나아가자면, 어머니는 태어나자마자 죽은 언니의 얼굴이 달떡처럼 하얬다고 말한다. 그것은 언니의 얼굴이 정말 흰색이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세상에 처음 태어난 언니가 순수하고 ‘흰’ 존재였다는 의미에 더 가까울 것이다. 언니는 ‘흰’ 상태로 태어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고, 시간이 흐른 뒤 언니가 잉태되었던 어머니의 뱃속에 주인공이 잉태된다. 세상에 처음 태어난 주인공 또한 언니처럼 ‘흰’ 존재였을 것이다. 그러나 삶을 살아가며 때가 묻고, 결국 ‘흰’을 잃게 된다. 그럼에도 마지막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때, 주인공은 일부나마 ‘흰’을 회복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마치 그녀가 살던 집의 문이 다시 하얗게 칠해진 것처럼 말이다. 즉, 이 소설은 ‘우리의 존재가 ‘흰’ 상태와 ‘흰’을 상실한 상태를 반복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보인다.
결말 부분은 주인공의 회복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한국에 돌아오고 서울에는 흰눈이 내린다. 주인공이 발을 내딛을 때마다 눈위에 구두 자국이 새겨지지만 내리는 눈으로 이내 다시 하얗게 덮힌다. 결말부분에서 소설은 우리의 존재가 영원히 ‘흰’ 상태일 순 없지만 더러워지더라도 다시 ‘흰’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가장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는 세상의 모든 ‘흰’에 대해 묘사하는데, 그 묘사에는 생명력이 가득하다. 이 장면을 통해 ‘흰’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에너지는 살아있는 우리 안에 있으며 그 에너지 또한 ‘흰’의 일부임을 말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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