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채식주의자』는 그 어떤 자극적인 장면보다 조용한 고통이 더 깊숙이 파고드는, 섬뜩하리만치 아름답고도 비극적인 소설이다. 이 소설은 단순히 육식을 거부하는 한 여자의 선택이 아니라, 그 선택이 개인과 사회, 가족 사이에서 어떻게 갈등으로 증폭되고 붕괴로 이어지는지를 그린다. 그리고 그 갈등의 이면에는 ‘침묵 속의 저항’이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
주인공 영혜는 끔찍한 악몽 이후 고기를 거부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 기행’으로 받아들이지만, 실상 그녀의 행동은 사회적, 심리적 억압에 대한 가장 비폭력적인 저항이었다. 영혜는 단 한 번도 거창한 언어로 자신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녀는 말 대신 식사를 거부하고, 인간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참여인 ‘식욕’을 포기함으로써 자신을 지워간다. 이것은 육체와 정신, 인간성과 생명성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다.
특히 1부에서 남편의 시선을 통해 본 영혜는 철저히 도구화된 존재다. 남편은 영혜를 ‘그저 평범하고, 특별할 것 없는 아내’로 여긴다. 그녀가 고기를 거부하고 자해에 이르자, 그는 당혹스러워하지만 결코 그녀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이 장면은 가부장적 사회가 여성의 자율성과 정신을 얼마나 무시하고 억압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아버지가 강제로 고기를 먹이는 장면은 단순한 가정폭력을 넘어, 권위와 질서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폭력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
2부 ‘몽고반점’은 인간의 욕망, 특히 그것이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어떻게 왜곡되고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형부는 영혜의 몸을 ‘작품의 대상’으로 삼지만, 그의 시선은 명백히 성적이고 소유적인 욕망으로 가득하다. 결국 그는 경계를 넘고, 그 파국은 누구에게도 책임지지 않은 채 오직 영혜만이 감당하게 된다. 한강은 이 장에서 인간이 타인을 대상화하며 자신을 예술가, 혹은 구원자로 착각하는 위선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3부 ‘나무 불꽃’에서는 언니 인혜의 시선으로 영혜의 존재가 다시 조명된다. 이 장은 단순한 관찰을 넘어, 인혜 자신이 영혜를 통해 억압된 자아를 마주하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혜조차도 여성으로서 감내해온 폭력과 외로움이 있었고, 영혜의 광기를 통해 자신 역시 뿌리 뽑힌 존재임을 자각하게 된다. 영혜가 식사를 거부하며 “나는 나무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할 때, 그것은 단지 생물학적 형태가 아니라 인간 사회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난 절대적인 평온, ‘존재의 자유’를 의미한다.
『채식주의자』는 불편하고 난해하다는 평가를 종종 받는다. 이는 소설이 말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과 상처, 사회 구조의 불합리를 ‘은유와 침묵’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다. 그러나 친절하지 않기에 더 진실되고, 무례하지 않기에 더 무섭다. 영혜는 외치지 않고도 저항했고,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파괴적이었다. 그녀의 침묵은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타인에게, ‘정상’이란 이름으로 부여하는 억압의 무게를 반영한다.
한강은 『채식주의자』를 통해 물었다. 타인의 고통을 우리는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가? 타인의 선택이 나의 질서를 깨뜨릴 때, 우리는 그것을 얼마나 ‘비정상’으로 단죄하고 있는가? 무엇보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서 진짜 미친 것은 과연 누구인가?
영혜는 고기를 거부했지만, 그녀가 진짜 버리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인간이었을지도 모른다. 폭력과 소유, 욕망과 질서로 얼룩진 인간의 세계. 그녀는 그 세계를 떠나 나무가 되어야만 진짜 자신일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