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1980년 광주라는 역사적 비극을 배경으로, 그날 사라진 사람들과 끝내 작별하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 경하는 오랜 친구 인선의 실종 이후 수십 년이 흘렀음에도 그날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한강은 이 작품을 통해 단순한 개인의 슬픔을 넘어, 국가 폭력과 침묵의 역사에 맞서 싸우는 기억의 윤리를 다룬다. 이 소설은 광주라는 공동체적 비극을 개개인의 서사로 끌어오며, 사라진 자들과 살아남은 자들 사이의 관계를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보여준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무언가를 잃었거나, 잃은 것을 되찾기 위해 애쓴다. 경하는 인선이 실종된 뒤에도 그녀를 잊지 못하고, 그 어머니와 함께 그녀를 기억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인선의 어머니는 끝내 말문을 닫은 채 살아가지만, 그녀의 침묵은 포기나 망각이 아닌 또 다른 방식의 저항이다. 이들의 시간은 멈춰 있지만, 그 멈춤 속에서 작가는 기억하고, 증언하고, 기록하는 일의 중요성을 말한다.
한강의 문체는 늘 그렇듯 절제되어 있다. 이 소설에서도 그는 감정에 호소하기보다는, 차분하고 시적인 문장으로 독자를 이끈다. 한 줄 한 줄이 마치 정지된 필름처럼 느껴지며, 장면마다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격렬한 묘사 없이도 깊은 울림을 주는 힘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전달하는 방식에서 나온다. 특히 경하가 인선과 관련된 기억들을 따라가며 하나씩 복원해나가는 과정은, 읽는 이로 하여금 역사적 진실을 향한 집요한 시선을 함께 견디게 만든다.
작품 속 가장 인상 깊은 문장 중 하나는 “나는 그들을 놓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 짧은 한 문장은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자, 한강이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의 집약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죽은 이를 잊지 못하는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사라진 존재들의 존엄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윤리적 결단이다. 이 문장을 통해 우리는 작별을 유예함으로써, 진실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읽게 된다.
이 소설은 죽음을 다룬 이야기지만, 동시에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살아 있는 자가 죽은 자를 기억하는 방식, 망각하지 않기 위해 남기는 기록, 침묵 속에서도 이어지는 관계가 이 작품의 중심을 이룬다. 한강은 이 모든 과정을 문학적으로 끌어올려, 말로 설명되지 않는 고통의 흔적을 조심스럽게 되살려낸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가볍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문학으로서의 힘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광주에 관한 또 다른 기록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기억의 힘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이야기이다. 책을 덮고 나면 잔잔한 파동처럼 여운이 길게 남는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결국 작별하지 않는다는 것이 진실을 붙드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쉽게 지나갈 수도 있는 하나의 비극을 끝내 기억하려는 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기억이 만들어내는 연대와 회복의 가능성이 이 작품의 진짜 힘이다. 한강은 말없이 무너진 자리 위에 조용히 말을 얹으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와 사람들을 문학이라는 방식으로 불러낸다. 그리고 독자는 그 부름에 응답함으로써,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한 부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