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피 묻은 봄의 소년, 그가 온다 – 한강 『소년이 온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광주의 비극을 단지 역사적 사건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온몸으로 통과한 ‘개인들’의 내면과 고통에 집중한다. 그 중심에 선 인물은 열다섯 살의 소년, 동호다. 어린 그는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돕다 끝내 스스로 죽음을 맞는다. 하지만 한강은 그 죽음을 선정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한강은 죽은 자의 입을 벌려 산 자의 죽음을 말하게 한다. 그 시점의 전환은 독자에게 섬뜩한 체험을 안기고, 오히려 절제된 거리감이 그 죽음을 더욱 충격적으로 만든다.
도청을 끝까지 지켰던 동호와 소년들은 무기를 들고 있었음에도 끝내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항복한 상태에서 무참히 살해된다. 그것은 단지 육체적 죽음이 아니라, 말할 수 있는 권리조차 빼앗긴 자의 운명이었다. 한강은 이처럼 광주의 잔혹함을 묘사하면서도 결코 과장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저 그 죽음을 바라보고, 기억하고, 다시 말함으로써 살아남은 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그 소년의 죽음을 기억하고 있는가?
『소년이 온다』는 여섯 명의 화자를 통해 그날의 기억을 조각처럼 펼쳐낸다.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그날 이후를 견딘다. 누군가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누군가는 몸과 마음을 병들어가며 버틴다. 한강의 문장은 거칠지 않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감정을 자극하기보다 차분히 침잠시키며, 독자로 하여금 오히려 더 깊이 고통에 다가서게 만든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6·25전쟁 이후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낳은 사건이지만, 그저 ‘역사’로만 치부하기엔 너무 많은 이름이 그 안에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권리는, 이름 모를 이들의 절절한 피와 바꾼 피 묻은 가치임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광주라는 도시, 그리고 그 안에 묻힌 수많은 ‘동호들’의 존재를 떠올릴 때, 우리가 오늘 숨 쉬고 있는 이 순간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이 더욱 선명해진다.
동호는 한강이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이지만, 동시에 가장 사실적인 진실이다. 그 앳된 소년이 역설적으로 가장 묵직한 고통을 담아낼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결코 어떤 정치적 수단이 아닌,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자 했던 존재이기 때문이다. “동호야” 하고 부르면, 소년이 온다. 그리고 그 소년과 함께, 총성으로 찢긴 봄날이 다시 찾아온다.
소년이 온다는 건 아직도 그곳에 고여 있는 시간들, 사람들의 절규, 묵직하고 진득한 고통이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일이다. 『소년이 온다』는 그 고통을 외면하지 말라는 문학의 외침이며, 역사의 무게를 온전히 마주하라는 시대의 명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