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나서, 나는 감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이 작품은 단순히 광주의 5월을 재현하거나, 국가 폭력을 고발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작가는 살아남은 자의 시선이 아닌, 떠난 자들의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게 한다. 나는 그 지점에서 이 소설을 다르게 느꼈다. 죽음조차 완전히 끝이 아니며, 기억은 산 자의 것이 아니라 죽은 자들이 우리 곁에 남겨두고 간 숙제라는 점. 소설은 그 숙제를 마주하게 한다.
동호는 죽어서도 ‘말’을 건넨다. 그의 시점은 죽은 자의 시점이지만, 그의 목소리는 선명하고 뚜렷하다. 고통스러운 장면들이 반복되지만, 한강은 그것을 자극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고통의 중심에서 "존엄"을 붙잡는다. 가장 끔찍한 장면에서도, 나는 인간다움의 마지막 불씨를 보았다. 그것은 오히려 더 큰 감동과 침묵을 가져왔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시신들이 방치된 장면이다. 더 이상 이름도 불릴 수 없는 존재들이 서로 기대어 있는 그 순간은, 살아 있는 사람들보다 더 깊은 연대를 보여준다. 그들은 폭력에 의해 짓밟혔지만, 서로를 안아주며 끝까지 인간으로 남는다. 나는 그 장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것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존엄의 마지막 몸짓이었다.
그리고 그 장면은 내게 묻는다. “너는 오늘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
『소년이 온다』는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이 소설은 ‘기억하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역사책을 읽듯 되풀이하라는 말이 아니다. 한강이 말하는 기억은 살아 있는 우리가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기억은 의무가 아니라, 죽은 자들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인간적인 유산이다.
우리가 그것을 망각할 때, 다시 폭력이 시작된다.
책을 덮고 난 후, 나는 긴 시간 침묵 속에 머물렀다. 한참이 지나고서야 조심스럽게 한 문장을 떠올렸다. “나는 어떤 죽음을 기억하며 살고 있는가.” 그리고 곧 이어 또 하나의 질문이 따라왔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은 무겁지만, 반드시 붙들어야 할 것이다. 『소년이 온다』는 끝내 우리에게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억하고, 부끄러워하고, 다시는 외면하지 않으려는 마음 속에서, 조용한 빛 하나는 피어난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