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아픈 기억을 담담하고 침착하게 담아냈다. 차분하고 담백한 문체는 당시 급박하고 비참했을 상황과 대조되어 당시의 비극이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 차분한 것이 아니고 고통과 충격에 눌린 무거움일 수도 있겠다. 그날의 기억을 악몽처럼 지니고, 시체처럼 죽음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동호는 정대와 시위대를 구경 갔다가 무자비한 군인들과 총알 앞에 쓰러지는 군중을 마주한다. 군인의 총에 쓰러진 정대를 본 것 같은 기억과 그에 대한 묘한 부채 의식에 동호는 정대의 시신을 찾기 위해 상무관에 갔다가 시민들과 함께 군청을 지키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은숙과 선주를 만나고 진수를 만나게 된다.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고 그로 인해 이들은 죽음과 고문을 받아 각자의 무거운 삶을 지게 된다.
정대의 혼은 죽은 몸 옆을 지키며 죽음 이후의 순간을 경험한다. 군인들은 계속해서 시신을 가져오고, 아무렇게나 쌓아 놓는다. 인간으로서 존엄했어야 하는 사람들이 죽음의 순간도 비참했고 시신도 쓰레기 소각장에 던져지는 폐기물 덩어리처럼 대접 받는다. 시신이 불타서 자유롭게 된 정대의 혼은 동호를 찾아 가려고 하지만 그 순간 동호의 죽음을 느끼게 된다.
은숙은 군청을 빠져나와 목숨은 건졌으나 그 날의 기억을 짐으로 지고 살아 간다. 출판사에서 일하다 수배자에 대한 조사로 불려가 뺨을 세차게 맞고 돌아온다. 일곱 개의 뺨을 하루 하나씩 잊고자 하지만 그날의 기억처럼 마음대로 지워지지 않는다. 출판을 하려던 서 선생의 책은 검열을 받아 대부분의 내용이 지워지지만, 서 선생은 같은 내용으로 연극에 올린다. 검열로 지워진 부분은 배우들이 입만 움직이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방법으로. 독재 정권의 검열 아래 우리 사회는 목소리를 잃었다. 죽은 자들을 제대로 장례하지 못해 남은 자들의 삶이 장래가 되었다. 동호의 이름도 부르지 못하면서.
진수는 총기를 소지하고 끝까지 저항했기 때문에 더 가혹한 수감 생활을 하게 된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대접도 받지 못하며 먹을 것을 놓고 눈치보고 잠과 싸우며 성적 수치심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고통 받는다. 트라우마로 인해 술과 수면제 없이는 생활이 힘들게 되고, 힘겹게 버티다 결국 삶을 등진다.
선주는 당시 상황에 대한 증언을 부탁받는다. 하지만 그날의 기억을 입으로 내뱉을 수조차 없다. 성희는 선주에게 자신을 지키는 일로 남은 인생을 흘려보내지 말라고 하지만 선주의 고통은 쉽사리 밖으로 나올 수 없다. 잔혹한 고문의 상처로 가정을 이룰 수도, 평범한 삶을 살 수도 없다. 끔찍한 경험 속에 신의 사랑은커녕 죄를 사한다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 “성희 언니는 나와 달라. 언니는 신도 믿고 인간도 믿으니까. 난 한번도 언니에게 설득되지 않았어. 오직 사랑으로 우릴 지켜본다는 존재를 믿을 수 없었어. 주기도문조차 끝까지 소리 내 읽을 수 없었어. 내가 그들의 죄를 사한 것같이 아버지가 내 죄를 사할 거라니. 난 아무것도 사하지 않고 사함 받지 않아.”
동호 어머니의 독백을 통해 남겨진 가족들의 응어리진 한이 느껴진다. 자식 셋을 키우던 소소한 일들을 추억처럼 이야기 하고 있지만 막내의 부재로 인해 그 이야기는 빛 바랜 사진 같고, 숨을 멎게 만든다. 사랑으로 키운 자식을 상상도 할 수 없는 황당한 사건으로, 그것도 국가의 권력에게 잃은 부모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는가.
결국 전두환과 군부 독재에 대한 분노로 마음이 이끌린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람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만이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고 주장하고, 그 와중에 극단적이고 공감능력 없는 사람들이 끼어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섣불리 누군가를 용서하라고 말할 수 있는가? 선주의 독백을 보며 용서의 무거움에 대해 생각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값싼 동정과 위로가 얼마나 부끄러운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