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그림자를 비추는 거울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는 독자에게 익숙한 ‘가가 형사 시리즈’의 세계관을 유지하면서도, 한층 더 깊고 복잡한 인간 심리를 다룬다. 작품은 ‘누가 죽였는가’보다 ‘왜 죽였는가’에 집중하면서, 독자 스스로가 사건의 윤리적 무게를 판단하도록 유도한다.
이야기는 고급 요양병원 ‘나루미가오카’에서 한 노인이 죽은 채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병원은 철저한 보안과 특급 서비스를 자랑하지만, 그 안에서는 치밀한 갈등과 오랜 비밀들이 얽혀 있다. 피해자인 다카토 노리는 전직 관료 출신으로, 겉보기엔 고요한 노후를 보내고 있었지만, 과거의 어떤 잘못으로 인해 병원 내부에서 누군가의 증오를 받고 있었다.
가가 형사는 아버지의 죽음을 둘러싼 과거를 쫓으며 병원에 깊숙이 발을 들이게 되고, 사건의 실마리를 하나씩 밝혀낸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입원환자들과 그 가족, 간병인들의 숨겨진 동기와 감정을 파헤친다. 그들의 말과 행동에는 단순한 살인의 동기를 넘어선, 깊은 상처와 절망이 배어 있다.
결말에 이르러, 가가는 ‘누가 죽였는가’보다는 ‘무엇이 이들을 그렇게 만든 것인가’를 묻는다.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은 독자를 놀라게 한다. 진짜 범인은 의외의 인물이지만, 그가 저지른 죄보다 그에게 향한 세상의 무관심과 냉담함이 더 큰 죄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 가가 형사의 내면 또한 변화한다. 냉철한 수사관으로만 보였던 그의 모습에, 이해와 연민이 서서히 스며드는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번 작품에서 ‘죄’의 윤리적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법의 잣대는 명확하지만, 인간의 감정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어떤 이의 고통이 누군가에게는 이유가 되고, 그 이유는 때로 범죄로 이어진다.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판단하게 만드는 이 방식은 여전히 히가시노다운 서술이다.
책을 덮고 나서도 마음 한켠이 묵직했다.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는 단순한 추리소설이 아니라, 인간의 죄책감과 무력감, 그리고 이해받지 못한 고통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순간, 어쩌면 우리 모두가 누군가를 죽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질문이, 오래도록 내 안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