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큐레이션..
'큐레이션'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콘텐츠를 목적에 따라 분류하고 배포하는 일을 뜻하는 말이다. 원작자의 핵심을 정리하고 이 정보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더하는 작업. 저자는 패션 에디터, 콘텐츠 마케팅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 하였고 의도치 않게 일본 도쿄 생활을 6년간 하게 되면서 여행자가 아닌 거주자의 시선으로 도쿄를 바라보고 그 속의 일상을 가감없이 전해 준다.
책의 내용은 도시공간과 건축, 문화에 대하여 풀어놓은 '형태'로 시작한다. 이어 브랜드와 숍에 대한 이미지를 그리는 '빛'으로 이어지고, 도쿄의 일상을 거주자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말 하고, 여행자가 아닌 현지인이 사랑하는 로컬들의 진짜 맛집을 소개하는 '맛'으로 소개한다. 이어 스타일을 만든 크리에이터들과의 대화를 모아 놓은 '사람'으로 마무리한다. 거기에 덤으로 도쿄에 가게 되면 하루쯤 느긋한 여정을 즐겨보라고 비밀스러운 장소를 소개하는 'BEYOND Tokyo'까지..
저자가 존경하는 일본의 건축가 구마 겐고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건축을 추구한다. 환경에 녹아들어 마치 환경의 일부가 되기를 희망하는 건축이다. 대신 그 자리에 풍요롭게 반짝이는 햇살과 나무, 시간의 변화와 계절의 감각을 가득 들여 놓는다. 이를테면 건물의 천장과 기둥을 세우고 벽면은 밖이 훤히 보이도록 없애거나 혹은 통유리로 하는 등의 스타일이다. 그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사라지는 건축'이 아닌가 한다.
'이케바나'..
이케바나는 살아 있도록 꽃을 꽂는 일본의 전통 꽃꽂이로 자연의 일부인 꽃을 꽃병으로 옮겨 와 그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이케바나를 접하게 된 것은 꽃을 좋아하기도 했거니와 이방인이 아닌 일본 사회의 한 단면에 들어가기 위한 그만의 몸부림이었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수업을 통해 이케바나 너머의 어떤 세계를 배웠고 이케바나가 일반적인 꽃꽂이가 아니라 화도라고 불리는 건 그림이나 조각처럼 예술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심플하게 먹는 즐거움을 터득하고 잘 조리된 싱싱한 생선의 맛을 제대로 음미하게 된 것도 모두 일본 생활이 알려준 소소한 기쁨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방어, 연어, 가자미 등 제철의 생선을 소금구이, 양념굽기 등의 생선구이 등을 즐길 수 있는 생선 전문 음식점에서 식전 음식으로 맛 본 보드라운 식감의 차완무시를 묘사한 부분이 재미있다. 우리나라의 달걀찜과는 성향도 매력도 다르다고. 포슬포슬함 뒤에 따라오는 짭쪼롬한 부드러움과 고소함이 폭탄처럼 터지는 우리나라 계란찜과는 달리 차완무시는 혀 위에서 스르르 없어지는 말랑말랑한 푸딩의 식감을 한껏 살렸고, 읊조리듯 나긋하고 조금은 수줍은 은밀함이 깃든 일본식 달걀찜이 자신을 드러낸다고 했다. 꾹꾹 눌러 담은 흰쌀 밥과 정성껏 구운 생선 한 마리, 소박한 자연의 향이 깃든 미소시루 한 그릇을 만들어 내어 준 히끗히끗한 머리의 할아버지가 화답해 준 넉넉한 미소가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저자는 일본생활이 그의 안으로 완벽하게 빠져드는 참으로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한다. 일본이라는 섬에 고립되었던 코로나 기간은 일본과 도쿄의 속살을 부지런히 비빈 시간이었고, 말고 쾌청한 하늘 위로 부서지듯 날아가는 벚꽃처럼 계절의 순환과 천재지변을 삶의 일부분으로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법을, 물 흐르듯 그만의 속도대로 흘러가는 법을 그 곳에서 배웠다고 한다. 주위 사람과 낯선 이방인에게도 몸에 체득된 특별한 친절함을 보여주고 정성을 다 하는 그들. 일본의 표정과 태도, 정성에서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는 정갈한 가르침으로 글을 맺는다. 미운 것은 미운 거고 배울 것은 배워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