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학자의 시선으로 기록된 이 책은 수많은 죽음의 현장을 거쳐 온 저자가 마주한 사람들의 마지막 순간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사건 현장에서 수습되는 시신,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들의 흔적, 아무도 찾지 않는 고독사까지, 그가 마주한 죽음은 단순한 데이터나 통계가 아니라 분명한 ‘삶의 이야기’였다. 저자는 의학적 소견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죽음이라는 결과 너머에 존재하는 인간의 고통과 흔적을 섬세하게 들여다본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고독사한 노인의 방에서 발견된 낡은 일기장과 반쯤 비워진 약병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타인의 죽음이지만, 법의학자의 눈에는 외로움과 체념, 그리고 마지막 순간의 결심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또 다른 장에서는 어린아이를 잃은 부모가 시신 앞에서 오열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의학적으로는 ‘사인 규명’이 중요하지만, 그 이면에는 삶의 가장 뼈아픈 순간이 숨어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놓치지 않는다.
저자는 죽음 앞에서조차 무관심하거나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는 사회의 현실을 지적하기도 한다. 특히 고독사나 자살처럼 ‘예고된 죽음’에 대한 예방의식 부족, 사후 처리의 공공성 부족 등은 단지 개인의 비극을 넘어서 사회적 과제로 인식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각 장마다 소개되는 사례들은 때로는 충격적이고, 때로는 안타까우며, 무엇보다도 현실적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죽음을 슬프게만 그리지 않는다. 죽음이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관점에서, 저자는 삶의 태도와 방향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유족들의 태도, 생전 미처 전하지 못한 말들, 마지막을 준비하지 못한 이들의 후회는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죽음은 결국 모두에게 찾아오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순간을 준비하고, 남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작별을 남기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책을 읽는 내내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도 한 인간의 삶을 향한 존중과 연민이 느껴졌다. 죽음을 통해 오히려 삶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저자의 시선은 직업적 전문성을 넘어선 인간적인 공감에서 비롯된 것처럼 느껴졌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마주하며 이해하려는 그 태도가 오히려 삶을 더 따뜻하고 깊이 있게 만들어주는 듯했다. 이 책은 차분하게, 그러나 강렬하게 인간의 마지막을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