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너무 좋아하는 그리고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만이 비로소 세상을 바꿉니다.
이미 있는 프레임을 기준으로 사용하면서 정해진 것을 기준으로 세밀하게 따지는 작은 가슴으로 어떻게 시대를 가르는 돌파를 해낼 수 있을까?
번잡스럽고 자잘한 고려나 계산들을 일거에 무너뜨리고 감각적인 통찰을 믿고 나가야 그런 돌파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고명환 저자의 책 '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에서 추천한 도서입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 여러 재테크 관련 책을 읽고 있지만 한쪽으로 치우친 독서 보다는 부자의 품성을 기를 수 있는 인문학의 기틀도 필요하지 싶습니다.
그릇이 큰 사람은 기존의 가치 존중에 의해 인도되지 않고 자신에게만 고유하게 있는 비밀스런 힘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큰 사람이라고 칭하는 부류입니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고 참을 수 있는 사람.
들은 말을 여기저기로 옮기지 않을 수 있는 사람.
옳다고 하더라도 바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조금 더 기다려 볼 수 있는 사람.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의 체계를 뚫고 머리를 내밀어 볼 수 있는 사람.
호들갑 스럽지 않고 의연한 사람.
기다리면서도 조급해 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
수 없이 많은 기준이 있겠지만 자기만의 좋아하는 고유의 성질을 드러내는 사람으로 통칭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인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의미는 인문학을 풀어서 쓴 것입니다.
저자는 文과 理를 먼저 설명합니다.
理는 옥돌에 새겨진 무늬를 의미하는데 이 무늬는 자연이 새긴 문양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만드는 문양이 아니라는 것이죠.
이런 자연의 이치를 연구하는 학문이 이과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文은 문양 즉 옷에 그려진 무늬를 말하는데 이것은 인간이 그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문은 인간이 그리는 무늬라는 의미를 나타낸다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인간이 그리는 무늬는 인문학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우리가 인문학을 배우려는 이유는 창의성과 독창성을 인간의 문의에서 길어내기 위해서 인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가 자기 자신으로 스스로 일어서야 스스로 우뚝서야 가능한 일입니다.
자기가 자신인지 아닌지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식사를 하기 위해 모일 때 메뉴를 정하는 의논을 합니다. 이런 경우 자신이 무엇을 먹고 싶은지 모르는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인간은 성욕과 식욕이 가장 강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먹고 싶은게 없이 그저 배만 고프다는 느낌만 있는 경우는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평소 메뉴를 정하는 데 크게 관심이 없이 다른 사람이 정하는대로 따르기만 했던 나의 지난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나는 그동안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죽은 사람이었던 건가요.
이제부터라도 내가 먹고 싶은 것 그것이 무엇인지 느껴보고 말하는 연습을 해야 겠습니다. 살아있는 존재가 되기 위한 첫걸음이 아닐까요.
저자는 자기를 자기이게 하는 것은 욕망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가치관, 신념, 의무가 아닌 나 자신이 바라고 느끼는 원초적 욕망이 자기 자신인 겁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바람직한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아니면 바라는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여러분은 해야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여러분은 좋은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아니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우리는 바라는 일,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자기가 자기답게 사는 방법은 별다른 것이 없습니다. 반드시 따라야 할 것으로 자리 잡고서 자기를 짓누르고 있는 체계로부터 이탈하는 길 뿐입니다.
우리가 소유적 태도인지 존재적 태도인지 스스로 물어 봅시다.
저자가 예로 든 것이 아침 출근길에 타려고 했던 버스를 놓친 경험입니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을 있었던 경험이죠.
이때 마음 속으로 저 버스를 탔어야하는 데 놓쳐서 아쉽고 속상한 마음이 크다면 이것은 그 버스를 자기가 반드시 타야만 하는 소유의 개념으로 생각하고
자기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것 입니다.
하지만 놓친 버스를 소유가 아닌 존재의 관점으로 본다면 그 버스는 그렇게 그냥 지나간 버스일 뿐 나의 마음에 어떠한 동요도 일으키지 않습니다.
그냥 다음 버스를 기다리다 타면 되니까요.
나와 사물의 관계를 소유 관계로 보느냐 서로 다른 존재들의 존재 관계로 보느냐의 차이가 있습니다.
에릭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의 영문 제목이 To Have or To be인 것도 존재론적 사고를 잘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소유자 입니까? 존재자 입니까?